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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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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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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장자옥 목사

 

어느 초등학교에서의 일이다. 시에서 장학사가 오셔서 수업을 참관하는 날 이었다. 자연시간 이었다. 장학사는 교탁 위에 놓여 진 지구본을 가리키며 한 학생에게 물었다. “얘야, 저 지구본이 왜 저렇게 삐뚤어져 있는지 아느냐?” 그 때 그 어린이는 질겁하며 저는 결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장학사는 또 다른 학생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얘야, 저 지구본이 반듯하게 서있지 못하고 왜 저렇게 삐뚤어져 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전 정말 안 건드렸습니다.” 하면서 너무 긴장했는지 울상이 되어 버렸다. 수업이 그렇게 끝난 뒤 장학사는 선생님께 물어 보았다. “선생님, 지구본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던데 그 사실을 알고 계시던가요?” 했더니, “, 그거요. 원래 사올 때부터 그모양이더라구요. 글쎄장학사는 하는 수 없이 수업을 함께 참관했던 교장 선생님께 교장 선생님께서는 지구본의 자전축이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는 이유를 알고 계시겠지요?” 했더니 그 때 교장 선생님은 천연덕스럽게 장학사님, 요즘 국산이란 것이 다 저 모양 아닙니까? 기왕 장만하는 김에 돈을 더 주더라도 외국산으로 구입할 것을 잘못 했나 봐요.” 하면서 웃어넘기는 바람에 장학사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는 에피소드 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첫째,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무책임에 대해 지적하려고 한다. 이야기 속의 어린이나 선생님 심지어 교장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솔직히 모르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는데 무슨 이유를 찾는 줄 알고 자기에게 무슨 추궁이 떨어질 줄만 생각하고 나는 모릅니다.’, ‘나는 안 그랬습니다.’ 모두가 자기는 지구본과 무관하며 나에겐 하등 책임이 없다고 이유를 대기에만 급급한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도자들의 형태를 보면 전혀 책임의식이 없는 것을 본다. 나라를 안위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국민의 삶과 생활을 향상시키며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건설을 목표로 해야 할 텐데. 무슨 정책을 시험 삼아 시행해보는 것 같은 의혹이 들어가고 있다. 한 국가와 민족 집단을 이끌어가는 엄중한 대업을 위임 맡은 정부가 검증받지도 못한 이론과 정책을 믿고 나가면서 국민을 향해 따라만 오라 하면서 시행착오를 일삼으면 국민은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도자라고 만능일 수는 없다. 그러나 책임자가 되었으면 위임받는 사명에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아니겠는가.

두 번째, 문제의식의 부재를 지적하고자 한다. 어떤 특정한 사태나 사건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무관심의 소산이다.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과 관심이 없다. 세계 3~4대 부국인 남미 베네수엘라가 어떻게 하다가 최빈국으로 전락되었는가? 아르헨티나가 왜 그토록 싫어한 포퓰리즘 정권을 또 택하게 되었는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 최근 홍콩의 지방선거의 결과를 보고 홍콩시민들의 민주의식을 높이 평가할 줄 아는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 국민이 문제의식을 잃어버린 좀비 같은 인생이 되지 않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 빅토르 위고가 어느 날 파리의 노트르담 지하 벽에 써진 낙서 숙명(宿命)이란 글자를 보는 순간 그 글을 쓴 사람에 관심을 가졌다. “누가 왜 여기에 하필 숙명이란 글자를 썼을까. 분명 그는 남모르는 큰 고민, 고뇌,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래서 쓴 작품이 그 유명한 파리의 노트르담곧 우리가 잘 아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썼다고 한다. 그는 집시 소녀 에스메랄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종지기 꼽추 카지모도의 숙명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쓴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하루하루를 책임성 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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