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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 마가복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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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무엇이냐?”

마가복음 5:1-20

 

신앙은 현실에 적용되고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나치정권하에서 평화를 외친 인물이며, 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정권에 분연히 맞선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목사의 신분으로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다가 투옥되고, 감옥생활하다가 1943439살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참담한 감옥생활, 고난받는 실존 속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깊이 고뇌하며 의연하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했다.

본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참한 삶을 살던 사람이 예수 안에서 자기를 재발견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를 아는 은혜를 누리기 바란다.

 

1) 한 사람의 회복에 관한 관심

광풍으로 죽음을 넘나드는 항해를 했던 배가 드디어 육지에 도착했다. 거라사, 이방인의 땅이지만 앞다투어 배에서 뛰어내려 두 발을 땅에 내딛는 순간 제자들은 육지다, 이제 살았다!” 안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다. 흉악하게 귀신들린 사람과 맞닥뜨렸다. 이름도 없다. 더러운 귀신에 붙잡혀 짐승처럼 산 사람, 산 것이 아니라 죽은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쇠사슬과 고랑으로 묶이고, 무덤 사이에 거처를 삼고, 무덤에서 산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소리지르며 살았다. 그리고 돌로 벌거벗은 몸을 긁어 자기 자신을 자해했다. 이 정도면 공포의 대상이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다. 쇠사슬로 묶은 이유도 언제 주민들을 해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서히 다가온 위협이 아니다.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여기서 은 헬라어로 유데오’(ευθεω), “즉시, 숨 쉴 틈도 없이라는 말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이 사람이 달려왔다는 말이다. 바다에서의 고통이 끝나자마자, 육지에서의 고통이 숨 쉴 틈도 없이 또 밀려온 것이다. 이게 바로 인생의 모습이다. 한 가지 고통에서 벗어나면 즉시 또 다른 고통이, 때론 더 강한 고통이 엄습해 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이 사람을 만나주신다. 그때 거라사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시지 않고, 다른 일도 전혀 하지 않은 예수님은 이 한 사람을 치유해주려고 찾아오셨던 것 같다. 성경은 이 사람을 만나 치유한 후 다시 바다를 건너가셨다고 했다(21). 한 사람의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신 셈이다.

 

2) 귀신을 내쫓고 구원에 이르게 한 질문

그때 귀신들렸던 이 사람도 예수님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자마자 달려왔다(6). 예수님은 그를 장악하고 있는 귀신들을 쫓아내신다. 로마 14군단이 주둔한 지역이기 때문일까? 이 사람 안에 있던 귀신은 군대 귀신, 군대라고 번역된 헬라어 레기온(λεγιων)’6,000명 정도의 규모, 어마어마한 숫자다.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나오라고 하셨고, 예수님의 허락으로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자 2천 마리 돼지 떼는 미친 듯이 바다로 내달려 몰사(沒死)하였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돼지 2천 마리를 희생시키신 셈이다.

제자들은 바다의 광풍에 속수무책이었듯이 귀신들린 사람 앞에서도 속수무책, 하지만 예수님은 해결자, 구원자이셨다. 바다의 광풍에서 제자들을 건지신 예수님은 육지에서의 위협에서도 제자들을 건지셨다.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예수님은 구원자이셨다.

예수님의 나오라는 말씀에 꼼짝없이 그 사람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귀신들, 자기 정체를 숨길 수 없어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7), 위기를 모면하려고 큰 소리로 괴롭히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있었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 우리는 위기를 느낄 때마다 숨을 만한 피난처이심을 믿어야 한다.

 

3) 나를 회복하게 한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귀신들도 대답해야 했지만 귀신들렸던 이 사람도 대답해야 할 질문이었다. “너는 귀신에 사로잡힐 존재가 아니잖아고유의 인격을 다 빼앗긴 채, 귀신에게 억눌렸던 그를 일깨우는 질문이다. 결국 귀신들이 빠져나간 이 사람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졌다. 이제는 벌거벗은 사람이 아니다. 자기를 자해하지 않고, 산에서 무덤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했던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다. 자기통제가 시작된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기 시작했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 일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예수께 떠나 달라고 해서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귀신들렸던 이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에게 집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정 회복을 소중히 여기셨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 것은 물론, 받은 은혜를 나누는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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