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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마가복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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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히 가라

마가복음 5:25~34

 

본문은 혈루증(hemorrhaging)으로 평안과는 거리가 먼 한 여인의 이야기다. 혈루증은 만성 출혈이라는 부인병, 당시의 의술로서는 불치병이다. 한 두 달만 아파도 지치는데 12년을 고생했다. 고치려고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백약이 무효,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고 이제는 아무 소망도 없다. 인생은 주저앉았고, 생명은 녹이 슬었다.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린다. 그런데 꿈도 희망도 없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이 딱한 여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예수라는 분이 자기 동네를 지나가신다는 것이다. 여인은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고, 율법이 정한 부정한 병자라는 장벽 때문에 정상적인 접근은 불가능한 상황(15:19-33), 발각되면 죽음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복음서 어디에도 이렇게 고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여인은 사력을 다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살짝 만진다. 결과는 대박! 여인은 주님의 능력을 이끌어내며 놀랍게도 오랜 불치병으로부터 고침을 받는다. 심지어 구원도 받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듣는다. “평안히 가라.”(Go in peace) 우리는 기적을 체험한 이 여인과 관련된 말씀을 통해 믿음의 도전을 받아야겠다.

 

1) 결단의 결과

 

이 여인의 상태는 한마디로 절망이었다. 병에 시달려 온 세월이 무려 열 두해, 12라는 숫자는 하늘의 수인 ‘3’과 땅의 수인 ‘4’를 곱한 수로서 완전을 상징한다. 참으로 길고 긴 세월 동안 고난 가운데 있었다. 고대 근동 사회의 치료 방법은 마늘과 같은 식물에 포도주를 섞어 먹이거나 환자를 놀라게 하며 너는 혈루에서 일어서라라고 외치는 것, 이 여인이 아마 좋다는 치료는 다 받았을 것이다.

 

마가(Mark)는 이런 치유 노력조차 결과적으로 평안은커녕 이 여인을 괴롭게 했다고 한다. 26절의 여인의 형편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보면 괴로움을 받았고’ ‘허비하였으되’ ‘효험이 없고’ ‘중하였던 차에등 네 단어는 모두 분사형으로 이 여인이 자신의 병으로 인해 받았던 고통을 현실감 있게 드러낸다. 27절의 소문을 듣고뒤로 와서도 역시 분사형, 지난 12년간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를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긴 호흡으로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돈도 다 떨어지고 몸도 마음도 지치고, 사회로부터도 버림받은 한계상황, 그저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이다. 도무지 절망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결단한다. 주저앉아 체념하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어나 무리를 헤집고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그게 고침 받고 평안히 가라는 말씀을 듣게 했다.

 

2) 결사적인 자세의 결과

 

12년이라는 긴 세월 때문일까? 사회와 종교 공동체로부터 따돌림받고,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불결하고 부정하다고 냉대받았었기 때문일까? 무리 가운데서 밀고 밀리던 이 여인은 기어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다(27-28). 결사적인 행동이다. 누가 인상을 찡그리든 낭패를 당하든 상관없다.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 거짓말처럼 곧 병이 낫는다.

 

의사였던 누가(Luke)뒤에서 옷 가에 손을 댔다”(8:44)고 했다. ‘옷의 가장자리라는 말이다. ‘손을 댔다는 헬라어 헾사토’(ήΨατο)는 부정 과거형, 옷을 계속 잡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 한 번 스치듯이 살짝 옷을 당겼을 뿐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29).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자비와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인 3중고에도 절망하지 않고 결사적인 자세로 예수님께 다가간 것이 결국 소원을 성취하게 했다. 여인은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구원과 병 고침으로 얻은 이 평안은 여인의 결사적인 자세의 결과였다.

 

3) 소원을 성취한 응답

우리 성경은 이 여인이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성경이나 독일어 성경, 영어 성경 그 어디에도 구원이라는 말은 없고, ‘내가 나을 것이라고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여인의 관심은 병 고침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밀하게 만졌기에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누가 손을 대었느냐”(Who touched me?)고 물으신다. 당사자를 곤혹스럽게 하시려는 의도일까? 아니다. 여인의 결사적인 자세를 느낀 예수님은 치유의 매개가 오직 믿음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셨다. 일종의 공개적인 신앙고백을 요구하신 것이다.

 

여인은 두려워 떨면서도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쭙는다(33). 예수님은 흡족하셨던 모양이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선언하신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의 말씀, 숨지 않고 나서서 고백한 것이 결국 병 고침은 물론 구원까지 받게 했다. 기대보다 너무 큰 평안이다. 어디가 아픈가? 고독한가?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선언을 하기 원하신다. “평안히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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