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 분류

영성의샘 | 100도(100°C)

작성자 정보

  • 조광성 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밤에 출출하거나 밥을 먹기 싫을 때 라면을 잘 끓여 먹는다. 따뜻한 보리차가 그리울 때는 팔팔 끓는 물에 보리차 티백을 넣어서 잘 우러날 때 까지 기다린다. 라면을 넣거나 보리차 티백을 집어넣기 전에 항상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물이 제대로 다 끓었는가? 끓는 물에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정상이고 끓는 물에 보리차 티백을 넣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것들이 당연한 이유는 물이 끓었기 때문이다. 끓지 않는 물에는 아무리 유명한 라면이라도, 아무리 새로 볶은 보리차 티백을 넣어도 소용이 없다. 반드시 끓는 물에 라면과 보리차 티백을 넣어야 맛이 난다.

물은 100°C에서 끓는다. 몇 번에 걸쳐서 20°C가 되었다고 해서 끓는 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100°C가 되어야 물은 끓는다. 90°C를 계속 유지해도 그것은 끓는 물이 아니다. 단지 따뜻한 물이다. 따뜻한 물로는 라면도 못 끓이고 차를 우려내기도 힘들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끓는 순간이 되어야 영적인 깊이가 생긴다. 내 마음과 영혼이 끓어야 은혜가 넘치는 기도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특별히 기도 시간에 100°C가 안 되는 생활을 할 때가 많다. 개인 기도시간이 되어서 잠시 몇 분 자리에 앉았던 것으로 기도했다고 말할 수 없다. 잠시 자리에 앉는 것을 10번 반복 했다고 내 기도가 끓는 것은 아니다. 한자리에 오랜 시간 앉아서 내 가슴이 끓고, 내 눈물이 끓고, 내 모든 생각이 뜨겁게 끓어올라야 깊은 기도를 체험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 삶의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 때 새로운 신앙과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자 결단하였다. 애타는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기도했다. 손을 불끈 쥐고 새로움으로 변화되고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스스로 만족한 마음으로, 후련한 마음으로 기도실을 나오며 시계를 봤다. 겨우 30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봐도 내 기도 시간은 30분을 넘지 못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개인 기도 시간이 도무지 30분을 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낙심도 되고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약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결단코 하나님을 깊이 만나리라는 의지로 2주간을 지속하니 기도시간이 1시간을 넘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2시간도, 3시간도 한 자리에서 기도할 수 있는 영적체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기도가 끓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기도도 어떤 순간이 지나야 뜨거움에 도달하고 끓어오르는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은 100°C에서 끓어야지만 여러모로 소용이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기도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안에서 끓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의 죄악도 씻어 낼 수 없고 깊은 영적 체험과 은사도 받을 수 없다. 깊은 기도, 뜨거운 기도, 끓어 오르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순도 높은 깨끗한 물처럼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의 인생을 점수로 계산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인생을 점수로 계산하지 말고 온도로 계산하고 싶다. 80점 짜리 인생, 100점 짜리 인생이라고 말하지 말자. 평균 80점 이상을 유지하라고 하지도 말고 100점 인생을 강요하지도 말자. 우리 인생과 신앙을 온도로 계산하자. 우리의 기도와 신앙이 100°C가 되도록 하자. 사람 사랑하는 마음이 100°C가 되길 기도 하자, 전도와 선교를 100°C로 하자. 당신은 지금 몇 점 인생이 아니라 몇 도 인생을 살고 있는가?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