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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 겸손히 섬기는 자가 번성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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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용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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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를 한다. 그러나 바로 당신이 섬기면서 살라면 그만 시쿤등하게 생각을 한다. 아니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라고 말을 하는 것을 본다. 이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바로 남을 섬기는 것이 자신이 부족하거나 남보다 모자라서 섬기는 것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보다 나으니까 섬김을 받아야 하고 당신보다 많이 배웠으니까 섬김을 받아야 하고 나는 당신보다 권력을 가졌으니까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솔로몬 왕이 죽자 나라가 갈라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북이스라엘을 맡기기로 작정하셨다. 그리고 남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에게 맡기기로 하셨다. 그런데 여로보암을 왕으로 모시기전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12:4) 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짓고, 궁전을 지으려고 많은 사람들을 노역으로 불렀고, 그리고 세금을 많이 내게 하였던 것이다.

이제 왕은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런 말은 들은 르호보암 왕은 아버지; 솔로몬 왕을 섬기던 신하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좋겠느냐는 것이다. 그 때 신하들은 이렇게 대답을 해준다.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이 종이 되리이다.”(왕상12:7) 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즉 이제는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라는 것이다. 지도자의 위치에서 섬기면 그들은 영원한 왕의 종이 된다는 것이다.

‘섬기는 자’가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세상의 왕들은 섬김을 받으려는 특권으로 살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들을 따르는 자들을 섬김으로 진정한 지도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시고 계신다. 진정으로 ‘높아지려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높아지는 비결이 바로 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자’는 주는 사람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보이신 분이시다.

어느 날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베드로의 장모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의 일행이 가버나움을 지날 때마다 수종을 들면서 극진히 섬김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만 집에 들어가 보니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즉시로 고쳐주시었다. 그리고 시중을 들게 하였다. 불쌍히 보면서 그 여인의 아픔을 만져주시며 고쳐주시는 그 행동이 바로 섬김의 본이 되시는 것이다. 자신을 주고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채워주시는 예수님은 바로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이런 성도를 만나게 된다. 정말 섬김의 삶을 살면서 기뻐하는 성도를 본다. 자신의 삶도 어렵고 힘든데 목회자의 어려운 삶을 먼저 생각하고, 성도의 어려운 형편을 살피면서 도와주는 성도를 본다. 그래서 목회자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회자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성도를 본다. 그의 섬김은 바로 목회자인 나를 웃음 짓게 한다. 그래서 목회의 힘을 얻는다. 바로 섬김은 남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남을 기쁘게 하고 더불어 자신도 기쁨을 얻는 것을 본다. 지금 우리들의 사회는 이 섬김의 삶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그를 통해서 번성하고 자신도 번성하는 사회를 그리고 자신의 주변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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