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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 두자춘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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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광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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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부잣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두자춘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두자춘은 성경 에 등장하는 탕자와 같이 세상의 헛된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고, 부모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도 모자라 더욱 큰 탐욕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또 어느 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야 할지 몰라 장안의 서문에서 하늘만 바라 보고 있을 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3백만냥 꾸러미, 일천만냥 꾸러미 , 삼천만냥 꾸러미를 그에게 주며, 이 모든 돈을 다 쓰고 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약조한다. 하지만 이미 세상의 헛된 욕망에 빠진 두자춘은 그 돈을 받아 모두 탕진하였다.

그가 모든 돈을 탕진하자 백발노인은 약조한 대로 그를 찾아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중요한 일을 해야 했는데, 그것은 불사약(불로장생의 선약)을 만드는 것으로 불사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불사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희비애로(喜悲哀怒) 등의 일체의 인간 감정을 상실한 사람만이 재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 어떤 희비애로(喜悲哀怒)의 일일 있어도 입을 열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그를 시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죽장을 타고 두자춘을 화산에 집어넣었다. 뇌성이 울려 펴지고, 독용이 화염을 뿜어 대고, 독하게 생긴 장군이 나타나 이름만 대면 풀어주겠다고 해도 두자춘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아내를 매로 치고, 활로 쏘고, 불에 볶고, 지져대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두자춘을 원망하며 사지를 찢긴 채 죽어 갔다. 이 장면을 목격한 독한 장군은 두자춘을 세상에 둘 수없는 비인간이라 하여 난도질해 죽여 버린다.

지옥에 떨어진 후에도 불사약을 만들기 위한 두자춘의 시험은 계속되어졌다. 독사지옥, 바늘지옥, 불솥지옥 등 갖은 고문을 당해도 그는 백발노인과 한 약속을 지티기 위해서 입을 열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염라대왕은 두자춘을 말 못하는 계집아이로 다시금 세상에 환생 시킨다.

여자로 다시금 태어난 두자춘은 성인이 되어 노진사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게 된다. 여자로 다시 태어나 남편을 만나고, 자녀를 키우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 두자춘에게 마지막 시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녀를 통한 시험이었다. 만약에 이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그는 불사약을 만들 수 있는 선인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염라대왕은 그의 아들을 잡아와 두자춘 앞에서 고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도 두자춘은 그의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결국 염라대왕도 두자춘의 입을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염라대왕은 그의 아들을 절구에 넣고 빻아 버리라고 명령한다. 결국 두자춘은 그의 아들이 절구에 빻아질 순간에 “안돼”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그 순간 모든 상황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원래의 두자춘의 모습이 되어 백발노인의 앞에 돌아와 있었다. 두자춘은 모든 감정은 잊었으나 마지막 고비인 자식 사랑만은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백발의 노인은 불로장생의 선약을 영원히 만들지 못하고 죽장을 타고 사라져 버리며 두자춘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벌써 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 주간이다.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모두 지나갔지만 부모님의 자녀들을 위한 사랑과 자녀들의 부모님을 향한 효도의 마음이 5월에만 국한 지을 수 있겠는가? 두자춘의 이야기는 단순히 중국에서 전해내려 오는 전설 따라 삼천리로 치부해 버려도 무방한 이야기다. 하지만 5월의 끝자락에서 다시금 우리의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의 낭만이 뿐일까?

성경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의(막7:24~30) 이야기처럼 우리의 부모님들은 스스로 개가 될지언정 자녀들을 위한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신다. 이러한 부모님의 사랑은 동양이라고 해서 더하고, 서양이라고 해서 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모름지기 부모라면 그 누구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극진하다.

바로 우리의 부모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까? 인간에게 최고의 사랑이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라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바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으신 사랑이니 어디서 이보다 더 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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