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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샘 | 소나무행렬모충 벌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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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광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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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종(盲從)을 국어사전에서는 ‘[명사]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남이 시키는 대로 덮어놓고 따름’이라고 정의하고, 맹신[盲信]은 ‘[명사]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아무런 근거도, 주장도 없이 누군가의 말만을 믿거나, 전통 혹은 전례였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사람이 맹종(맹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프랑스의 심리학자로, 또한 곤충학자로 유명한 파브르는 소나무행렬모충이라는 벌레로 맹종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소나무행렬모충은 선례와 경험을 답습하는 습성이 있다. 모충은 절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거나 방법을 찾는 일이 없기 때문에 심리학에서는 맹목적으로 선례를 따르다 실패하는 현상을 일컬어 ‘모충 효과’라고 부른다.

어느 날 파브르는 모충 여러 마리를 동그란 화분 주위에 한 줄로 배치시켜 테두리를 이루게 한 후 화분에서 15cm 떨어진 곳에 모충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송진을 뿌려 두었다. 모충은 선례에 따라 앞의 동물을 쫒아가는 습성이 있었기에 모충들은 자신의 앞에서 걸어가는 모충을 따라가고 있었다. 결국 모충들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화분의 주위를 맴 돌게 되었다. 일 분, 한 시간, 하루, 이틀 그리고 칠일이 지난 후에 모충들은 화분의 주위에 원을 그리며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모충들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모충을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가다 결국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첫 번째 실험에서 실패한 파브르는 똑같은 실험을 진행하다가 그 중에 한 마리를 먹이가 있는 송진 쪽으로 유인하고자 여러 방법을 사용해 보았다. 즉 행렬을 파괴시켜 모충에게 살 길을 열어주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혹을 해도 모충들은 여전히 앞 놈만을 열심히 쫓아갈 뿐 절대로 행렬을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파브르는 그 중 한 놈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다. 그러자 뒤따르던 모충이 잠시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이윽고 몸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모충의 대형은 완전히 흐트러지고 그들은 송즙을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실험을 하기 전 파브르는 모충들이 회분의 테두리를 따라 도는 일에 금방 싫증을 내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송즙을 찾아 벗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결국 파브르에 의해 강제로 모충의 행렬이 흩어졌을 때 모충들은 살 수가 있었다. 일차 실험에서 모충들이 모두 죽게 된 것은 결국 맹종 때문이었다. 맹목적으로 선례와 경험만을 따르려 했던 본성 때문에 좋아하는 송즙을 곁에 두고 먹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생명마저 잃은 것이다. 만약 그들 중 한 놈이라도 행렬을 흩어버리고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충을 비극적인 결말로 내몬 것은 그들이 갖고 있었던 습관적 타성과 맹목적 군중 추종이라는 두 가지 심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습성은 비단 소나무행렬모충이라는 벌레에게만 존재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알게 모르게 나의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습관적 타성과 맹목적 군중의 추종 심리이다. 우리가 습관적 타성에 빠지면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목표를 수정하거나 조정하기 힘들며 임기응변 능력이 부족해진다. 또 맹목적인 군중 추종의 경우,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을 내리면 비교적 안전하다 설령 일이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혼자 모든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한다는 식으로 살다보면 결국 자신의 주관을 잃어버리게 된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시대에 발맞춰 우리도 끊임없이 변화와 성장의 노력을 추구해야 한다. 기존의 방식만 답습해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지속적인 혁신과 시대를 앞서 가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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