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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 제2의 십자군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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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옥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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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무슬림 인구는 1백6십만으로 인구의 3%에 해당하며 10년 후에는 6백만, 2040년경에는 4백50만이고 2049년쯤이면 기독교인 숫자보다 많아질 것이라한다. 매년 1만명에서 2만명의 영국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 네델란드는 45년이 못되어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라한다.

이런 무슬림의 확산은 유럽 전체에 해당한다. 프랑스도 2065년 10월에서 11월 8일까지 비상사태가 선포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은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무슬림이 유럽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이미 중세때부터였다. 이슬람은 A.D 632년경 이미 아라비아 반도를 장악했고 750년경에는 아프리카 북 지중해 연안, 예루살렘은 물론 지금의 이란, 이라크; 900년 이후에는 터키, 그리스, 유고, 이태리 남부 스페인까지 점령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러한 이슬람의 북상을 저지한 운동이 1095년 11월 26일 교황 우르반 2세에 의해 일어났다. 4C 이후부터 신앙의 공로 축적으로 행해지던 성지순례자들을 터키군이 핍박함으로 발단되었다. 이 성지 회복운동은 1096년에 시작하여 1970년까지 간헐적이지만 약2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어떤 의미에선 더구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십자군운동은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유럽 특히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사람들로 구성된 대원들이 육로나 해로를 통하여 예루살렘까지 가는 것만도 전쟁 그 이상으로 힘든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왕국을 세운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 당시와 오늘날의 유럽 상황을 비교해 보면 너무나 상이한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그때 유럽 기독교인들의 열성이 대단히 뜨거웠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인데도 믿음으로 일치하고 분기했었다. 그런데 현재 유럽의 기독교는 그야말로 지리멸렬 상태이다. 둘째, 유럽이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물론 현재도 유럽연합이 형성되었지만 주로 경제적 이익과 안보를 바탕으로 연합된 것이다. 셋째, 남녀노소, 귀족서민, 수도사, 심지어는 소년소녀 십자군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유럽은 앉아서 안방까지 내주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위에서 살펴 본대로 예루살렘은 1270년 이후 회교도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700년이 지난 1947년 이스라엘군이 탈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지회복을 위한 십자군운동은 비록 실패하였으나 그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문화적 파장을 일으켰으니

첫째, 수도원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유명한 도미니크 수도원 성프랜시스가 대표적인 예다. 둘째, 스콜라 신학의 발흥이었다. 그리스어를 깨치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우고 헬라어 성서를 통해 천주교 신학이 부흥되었다. 셋째, 르네상스, 즉 문예 부흥이다. 1350~1650년까지 300년간 유럽에서 일어난 인본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문예 운동이다.

 

한마디로 그리스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휴머니즘 운동이었다. 이태리 르네상스는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회화 중심의 예술 운동이 주가되었고 북방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나라에서 헬라철학이나 성서번역 등의 결실을 거두면서 나중에는 각국어로 번역된 성서가 보급되어 종교개혁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십자군 운동으로 이스람의 유럽 진출이 좌절되었다는 점이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이스람 세력도 끈질긴 십자군을 맞아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더 이상 유럽으로 진격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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