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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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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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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염소의 어렸을 때 목소리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좀 성장한 후에는 염소의 목소리는 양보다 끝이 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음메헤~ 에!” 교인들도 초신자 및 집사 초기에는 목소리가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중직을 맡게 되면 목소리 끝 톤이 좀 올라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사님, 교회라면 최소한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아!” “우리 교회는 이런 면이 너무 약한데 시급히 개선해야 되지 않습니까?~아!”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동전은 양면이 있으며 양쪽을 다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듯이 교회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관점과 다른 교인들의 생각의 차이가 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이, 학력, 성장배경, 성별, 성품 및 교회를 향한 기대치가 다 다른 분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교인들을 이해하며 배려하는 생각의 작은 차이는 큰 결과를 낳게 합니다.

그 작은 차이와 큰 결과는 마치 이와 같은 것입니다. 작은 교회에서 스크린 화면에 복음송 가사를 띄우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원래 가사는 “주님 사랑해요”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딴 생각하다 이런 가사가 나가고 말았답니다. “누님 사랑해요.” 그 정도는 담임목사님께서 봐 주실 수 있었는데 다음 주일에 더 큰 실수를 하였답니다. “예수는 왕, 예수는 주”인데 그만 또 실수한 것이 이번에는 기독교 교리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예수는 왕, 예수는 증.”

가사 한 글자의 차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듯이 성도님이 교회와 교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그 결과가 실로 엄청납니다. 그 영향력은 자신 뿐 아니라 자식 및 손자 대의 신앙과 교회관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목회현장에서 분명히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예언, 방언, 영분별 및 입신의 은사가 아닙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교회와 교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요새 전국적으로 열풍이 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둘레길’입니다. 서울 북한산으로부터 최남단 제주도까지 둘레길을 앞 다투어 만들며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쉼과 느림의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어느 단체나, 그 누구를 향한 섭섭함과 날카로운 비판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을 자신 밖에서 재조명하며 세상과 사람을 향한 여유와 이해의 마음으로 재무장하고 싶은 심정으로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급히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체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 다시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됩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화를 잘 내는 민족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주 몇 병으로 자신의 속에 있는 화(禍)를 폭발 시키는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침, 낮, 그리고 저녁 구분 없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화병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일주일 동안 품었던 자신의 화를 푸는 곳이 아닙니다. 교인들은 화풀이 대상이 아닙니다. 교회와 교인들은 이해하고 덮어주며 같이 가야 할 대상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면 그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느림과 이해는 일보다 관계를 우선하는 성도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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