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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이야기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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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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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필자는 11년의 사역 후 안식년을 갖기로 하였다. 안식년을 갖기로 결심하게 된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아내의 건강이 염려가 되어서였다. 아내는 땀을 아주 많이 흘리는데 때로는 수건으로 닦아내다보면 피부가 벌겋게 되고 쓰라러울 정도로 흘릴 때도 있었다. 만약 필자가 그 정도로 땀을 하루만 흘린다면 기진해서 쓰러져 버릴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앞으로 진행될 신학대학원 사역을 위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때 마침 상암교회의 김봉수 목사님께서 비전을 가지고 기숙사에 있는 대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두 주간 동안 훈련시켜 주시기로 하셔서 기숙사생 15명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필자는 ‘팻’과 별로 깊은 대화를 가져보지 못했다. ‘팻’이 워낙 조용하고 자기의 힘든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필자는 정말 그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한 주가 지날 즈음 단체로 등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팻이 자주 아프다고 하여 그 계기로 여러 가지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 때 처음으로 그 아이가 아버지 없이 자라나 주로 할머니와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하는 동안 필자의 마음에 ‘이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팻’에게 “내가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사실 기숙사의 많은 아이들이 필자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친하게 지내기도 하지만 필자가 팻에게 제안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님을 팻에게 설명하고 “그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팻’은 눈물을 흘리며 필자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고, 그후부터 아버지와 딸로서 ‘팻’과 더 자주 대화하며 가까와 질 수 있었다.
‘팻’은 몸이 약하고 특히 신장에 자주 염증이 생기고 그래서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필자가 있을 때는 내색을 하지 않아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팻’은 그렇게 아플 때에도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며 일을 게을리한 적이 없고,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곤 하였다. 그래서 건강한 체질인 줄로만 알고, 그 아이의 아픔을 알아주지도, 싸매주지도 못했었다. 더욱이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면서도 아주 밝고 기숙사에서도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남들보다 더 봉사를 많이 하므로 전혀 예상치를 못했었다. 그럼에도 그 아이의 표정에 자주 어두운 그늘이 있어 보였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된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필자로 하여금 정말 이 아이를 잘 볼봐주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하였다.

그 후로 ‘팻’에 대해 좀 더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팻’에게 “앞으로 아버지를 도와서 교회에서 같이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다. ‘팻’도 처음엔 망설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로 서원하였다. 그렇게 2년이 지나면서, ‘팻’은 시골학교에서 교생실습을 다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4월부터 시작되는 신학기부터 정식으로 신학생이 되어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다는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기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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