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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성장로의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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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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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내리고 잎이 난 꿈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할 수 있다.
우리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될 수 있다.
우리는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가질 수 있다.
무엇을 하거나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갖는가는
모두 우리 생각에 달렸다.
-로버트 콜리에-

고교 2학년 겨울은 나의 인생을 바꾸는 겨울이었다. 정규오 목사님이 계시는 광주중앙교회에서 광주시내 고등학교 학생 600여 명이 모이는 수양회가 있었다. 그때 강사로 모신 대구 서문교회 이성헌 목사님은 모인 학생들에게 큰소리로 외치고 계셨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요셉 들입니다.”
큰 꿈을 가지십시오. 찬란하고 영롱한 꿈을 꾸십시오! 여러분 중에 골목가게 주인이 되고자 꿈을 가진 이가 있습니까? 그러면 골목가게 주인 밖에 못됩니다. 더 큰 꿈을 가지십시오!“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내 꿈은 은행이나 농협에 취직해서 밥이나 먹고사는 것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정도의 꿈을 가진 것이 부끄러웠다. 나의 꿈이 너무 초라하고 왜소해보였다. 이것을 먹고살려는 방편을 될 수 있어도 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꿈을 이루려고 서울대학교에 가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돈이 없고 가난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다. 구하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운명의 세 고리를 끊을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답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탈출구는 공부를 잘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연상되면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주님! 광주상고에서 수석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나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런데 한 학년이 1,200명이 되는 광주상고에서 수석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불가능한 기도 제목이었다.
그 당시 내 성적은 전교에서 60등정도, 때로는 80등까지 밀리곤 했다. 60등에서 80등을 오가는 중간치 성적으로 전체 수석까지 된다는 것은 꿈에서나 일어날 일이었다. 사실 광주상고는 말이 상고일 뿐이지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다. 전교 1등부터 한 20등까지는 가난해서 광주상고에 온 것일 뿐 머리는 수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시골이나 섬지방 중학교에서 수석을 한 학생들이 많았다. 호남의 명문 광주서중에서도 광주일고에 진학하지 않고 광주상고를 온 학생도 더러 있었다. 그러니 이 가난한 수재들이 20~30등 이내에 포진한 상태에서 중간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내가 수석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뒤에 있는 60등에서 100등까지도 평균 3~4점 안의 범위에 몰려있는 중간 보통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유지하기도 쉽지가 않은 형편이었다. 잠을 줄이고 화장실 는 시간도 아낄 만큼 공부에 집중해야만 중간 정도 수준에서 20등 부근까지 갈 수 있을 지 모를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수석을 원하는 것은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고 턱없는 꿈을 꾸는 것처럼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는 말을 믿었다. 믿고 정말로 미친 듯이 열정적으로 공부하였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면 “선생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아로새겨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나의 눈과 정신을 선생님께 집중했다.

성문종합영서(당시 정통 종합영어)라는 영어 참고서를 매일 몇 장씩 뜯어서 들고 다니며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외워버렸다. 새벽 기도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기도의 힘이 있어서인지 잠은 4~5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증인이 두 명이 있다. 바로 밑의 동생 송영천(현재 서울고등법원현사7 부장판사)은 동성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 밑의 동생 송영길(현재 민주당 최고위원:3선)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아우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으며,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

그저 큰형이 하는 것을 보고 흉내 내면서 따라오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싶다. 아우들은 미친 듯이 열심히 공부하는 큰형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로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형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70년 역사의 광주상고에 기적이 일어났다. 공부를 잘한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어도 중간치기인 학생이 전체 수석을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해내고 만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공부한지 1년 4개월...
나는 광부상고 전체(진학반)에서 수석을 하였다. 믿음을 가지면서부터 꿈도 달라져 은행원 시험 준비는 아예 그만 두웠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어린 생각에도 나에게는 가족의 생계보다 더 가치있고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큰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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