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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하라!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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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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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신앙인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에게도 학창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나의 신앙은 정말 깨끗하고 정직했다고 생각한다. 전도사님의 말씀대로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했다. 말씀공부도 전도생활도 기도생활도 그리고 봉사생활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 중에는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되는 담대함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라고 생각된다. 그 때는 자율학습이 있어서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다녔다. 밤 9시까지 공부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학생회 문학의 밤을 준비하라는 전도사님의 말씀이 게셨다. 아무리 생각을 그 일을 감당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시간도 그렇고 또 그런 경험도 없었다. 제1회가 되는 문학의 밤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자꾸만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자율학습을 빼어달라는 생각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찾아갔다. 정말 담대함을 가지지 못하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을 무엇 때문에 빠지려는 것이냐고 화를 내면서 물으셨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이것이 왠 일인가? 조건을 붙여서 허락을 하셨는데 성적이 1점 내려가는 대로 매를 맞는다는 약속을 하고 허락을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매를 맞더라도 준비 할 수는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결과는 성황리에 잘 마치었다. 그러나 매는 피해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뻤다. 이 추억은 지금도 내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이후로 나는 신앙이 점점 담대해져갔다. 은혜도 사모하였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 해 가을의 일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여름에 있었던 성령님의 체험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성령님을 체험하라고 성도들이나 청년, 학생들에게 조차도 가르치고 강조하고 있다. 신앙의 담대함은 성령님의 선물인 것이다. 성령님이 함께 할 때 진정한 담대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이 담대함이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담대함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고(요16:33), 죽기 까지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으며(계2:10),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다.(딤후4:8) 이것은 다 담대함을 가질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구약의 다윗왕의 이야기는 누가 듣더라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그는 왕으로 기름을 부음 받을 때 성령님으로 충만해졌다. 그 후 그는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여 진정한 통일 왕국을 이루는 것을 본다. 그 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누가 보더라도 상대가 안 되는 골리앗을 향하여 외치는 그의 믿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허풍이 아니었다. 그의 체험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였기에 그는 그 어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상황이든 이기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의 크기와 두려움의 크기는 반비례한다. 믿음이 클수록 두려움은 작아진다. 그리고 두려움이 클수록 믿음은 작아진다. 어려움의 일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면 극복할 수 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무서운 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히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라고 하셨다(수1:6-9). 그리고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하셨다(사41:10).
이 시대 속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세상을 향하여 담대하고 강한 자로 쓰임 받을 자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목회자인 나뿐인가? 진정한 담대한 자들이 많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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