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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세상|한국교회는 중세로 돌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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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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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참 부끄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반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쓴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의 한 목사가 “담임목사직 매매 실태 개탄기자회견”을 하고 ‘목사직 반납’을 한 것이다. 이 뉴스가 전해지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 후 며칠이 지나면서 뉴스에 대한 반응을 살폈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어떤 반응이든 분명히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무반응이라 할 만큼이라는 잠잠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안에 담임목사직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금품이 개인적 혹은 교회적으로 오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코 교회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건만 자연스럽게 여기는 정도가 되었다. 교회를 설립해서 어느 정도 지나서 신자수까지 헤아려서 프리미엄을 받고 넘기는 일이 공공연하다. 게다가 이번 기자회견으로 인해서 세인들에게까지 알려진 담임목사직 승계에 돈이 오간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움이며 중병의 환부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환부의 뿌리가 깊고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데 있다. 언제부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980년대부터 보이기 시작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 더 일반화되었으며 이제는 거의 상식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 목사직을 반납한 목사의 공개적 행위는 그 아픔을 담은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그러한 행위에 대한 반응이 없는 것은 왜일까? 모르긴 해도 그 뜻에는 동감을 하면서도 현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즉 그의 행위에 대해서 공감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목사의 생존이 달려있는 것이기에 아프지만 어떻게 하겠느냐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반향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외적으로 한국교회는 칭찬을 받고 있다.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아시아에서 가장 늦게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게다가 식민지와 6·25사변을 경험하면서 가장 빈곤하고 사회적으로는 혼란했으며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던 나라의 교회가 성장해서 세계선교를 주도하는 위치에까지 이른 것에 대해서 칭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만연한 목사직 매매 사실을 안다면 그들은 한국교회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현상은 로마교회가 세계를 지배했던 중세역사에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중세에는 교직(성직)매매가 일상이었다. 단순히 사제가 되기 위한 매매만이 아니라 임지(보직)를 위한 매매 또한 일상이었다. 사제 임직을 위한 매매와 임지를 위한 매매는 결국 중세교회를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어떤 경우는 글조차 읽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이 신부가 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수입이 많은 임지를 관할하기 위한 다툼은 그 위의 보직자들에게 뇌물과 함께 임지를 매입하기 위한 금품을 주어야만 가능했다. 따라서 능력이 있는 사제는 관할하는 교회를 몇 개씩 가지고 있었으나 정작 자신이 관할하는 교회임에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수입이 많은 교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정치를 해야 하고 많은 권리금이 오갔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중세교회는 복음을 잃어버린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중세교회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이들의 말처럼 어쩌면 중세보다 더 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지. 중세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을 한지 이제 500년이 가까웠다. 500년을 맞는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중세와 비교하는 것이 못내 아프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지만 교직(성직)매매라는 말을 써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하지만 혈실이기에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어 질 것도 분명하다.

그러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한국교회가 어느 교단이든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개교회주의에 빠져있다. 공교회를 이루는데 유리한 감독주의교회들 조차도 개교회주의에 빠져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공교회로서의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신앙과 체계를 확립해야만 유형교회의 한계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질서를 확립하지 못한다면 기독교(개신교)는 가톨릭보다도 못한 문제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교회가 개교회주의에 떨어진 이유는 메가 처치(mega church)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메가 처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인데 그것을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좇아가려는 노력은 개교회주의를 양산하게 했다. 그렇다고 메가 처치가 무조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교단이나 정치형태와 관계없이 메가 처치를 동경하는 마음이 교회적 질서와 권위를 확립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개교회주의 형성하게 되었다 것이다.
그리고 공교회를 이룸에 있어서 전적으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 대한 통치자인 것을 존중하는 살아있는 신앙이 반드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교회적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주님이 말씀하심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자세로 주님의 뜻을 섬기겠다는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교회에서 주님의 통치권을 나타낼 수 없다.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신앙과 의식이 먼저 만들어져야만 진정한 하나님 나라로서 교회의 참된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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