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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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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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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장애 중에서도 가장 마음 아픈일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중학교 때 축구공에 맞아 시력을 잃게 된 강영우 박사. 실명후에 그는 서울 맹학교에서 학교생활을 계속 했고, 당시 자원봉사자였던 여대생인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50년전의 이야기다. 그후 10년뒤 예쁜 누나와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며 비전이 담긴 석자 “석은옥”을 선물하며 프로포즈를 했다고 아내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연세대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당시 NCC총무였던 김관석목사님의 도움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졸업 후 30년만에 153번째 연세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또 장애인으로는 최초 유학생으로 기록에 남은 그는 1972년 유학을 떠날 당시 한국 정부는 장애를 해외유학의 결격사유로 인정해 유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강 박사는 끝까지 불가능에 도전해 불평등한 법을 고쳐낸 후 유학길에 올랐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이 미국 정부의 고위 공직자가 된 과정과 미국 정부의 인재등용 3가지 원칙인 최고의 실력, 인격, 헌신의 자세를 말하고 이 3가지를 갖춘 지도자가 세계화 시대의 지도자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이유로 현대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리더쉽은 성경을 바탕으로 섬기는 리더쉽임을 말하며 섬김의 리더쉽은 기독교문화에서 나온 것이고 그 표본은 예수님이시라고 전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섬김의 리더쉽을 보여 주셨고 본이 되신 분이라며 세계화시대에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도 지도자가 되기 쉽다고 전한다. 시각 장애인이면서 미국 한인교포 가운데 최고의 공직에 오른 미 교육부 산하 전국 장애인 자문협회 의장(차관보급) 강영우박사(69)는 지난해 말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10월부터 담석으로 치료를 받긴 했으나 회복이 되었고 당시 정밀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다음 검사때 갑자기 췌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검사와 수술의 치료를 받았으나 앞으로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 이었다. 첫아들 진석(영어이름 폴)씨는 30만번 이상 백내장 굴절수술을 집도해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슈퍼 닥터로 뽑혔으며, 법률전문지 내셔널로저널이 40세 미만 최고 법조인 40명에 포함시킨 둘째 진영(영어이름 크리스토퍼)씨는 미 대통령 선임 법률고문이 되어 2대째 백악관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성탄절에 지인들에게 보낸 작별편지 형식의 이메일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평생을 살아왔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했다”고 심경을 적었다.

암 선고에 대해서도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까지 허락받아 감사하다”고 했다. “저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저를 인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한분 한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것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차분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국제 로터리 재단에 거액의 장학금을 내놓았다. 강박사가 20만 달러를, 그의 두 아들이 2만5천 달러씩을 기부했고 이에 로터리 재단은 워싱턴 DC에서 답례행사를 열었다. 더 갸륵한 것은 두 아들이 아버지의 기부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삶과 헌신은 앞으로도 계속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강영우박사의 기부. 사랑의 메시지가 우리 마음을 찡하게 울려주는 것은 오늘의 시대에 너무 귀하게 들려지는 참 신앙인의 희귀한 믿음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은 누구나 혼자 맞아야 할 엄숙한 사건이며 마지막 멧세지는 유언이다. 유언은 가장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변 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 아닐까. 2012년도 벌써 한달이 지나고 2월의 끝자락에 강영우박사의 가슴 찡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 보자 과연 내가 남길 가장 아름다운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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