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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하나님의 무언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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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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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극심한 기근을 면해 보려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양식을 구하러 온 형제들을 어쩌면 야속할 정도로 고생시킨다. 간첩 혐의로 몰아붙이고, 형 시므온을 감옥에 가두고, 막내 동생을 데리고 다시 오라는 등 얼마나 마음고생을 시켰는지 모른다. 또 그 일련의 일들을 타들어가는 가슴을 안고 시종을 지켜보아야 했던 노년의 야곱인들 애간장이 다 타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효자이자 성실한 요셉이 그렇게 매몰찼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들이 당한 그 고통은 요셉이 나름대로 선한 계획을 가지고 의도한 고통이며, 목적이 분명한 고통이라는 것이다. 명색이 형이라는 혈족 열 명이 동생을 팔아먹은 무서운 죄를 짓고도 13년이 넘도록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한 것을 보면 과연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가? 형들은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기근에 따른 끝없는 고통을 당하면서 오래 전에 지은 죄에 대해 뉘우치기 시작한다.
누가 심문하지고 않았는데 그들은 서로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죄를 범하였고 우리는 지금 그의 피값을 갚고 있도다”하면서 자기들의 죄에 대해 탄식한다. 고난은 하나님이 발하시는 무언의 음성이다. 고난은 내 영혼이 주님을 부르며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둘째, 고통도 고통 나름이겠지만 그것의 이유가 분명 내게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묵묵히 그 무게를 감내해야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인 죄값을 치를 길이 없지만 내 영혼의 속죄와 신앙과 인격의 성숙함을 위해서라면 때로 어린 양 예수처럼 잠잠히 수욕으로 배불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음미하게되고, 그 고통 가운데서 깨닫는 은혜를 통하여 우리 영성이 얼마나 경건하게 다듬어지고 넉넉하게 함양되는지 모른다.
시편에 흐르고 있는 다윗의 진주알같이 고귀한 영성은 그가 범죄한 후 주의 손이 주야로 누르는 중 그 영혼이 여름 가뭄에 마른 나무같이 혹독한 지경을 거쳐서 우러나온 열매들이었던 것이다.
셋째, 고통을 주는 사람의 고통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검찰청 기능 공무원인 손혁준씨는 빠듯한 공무원 봉급으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없어서 아예 학원이 거의없는 의정부로 이사를 갔다. 그런 환경 속에서 손 씨의 두 딸은 학원 한 번 가지 않았다.
큰 딸은 현재 교편을 잡고 있고 매달 50만원을 용돈 겸 숙식비 명목으로 부모님께 드린다고 한다. 작은딸은 연세대에 재학중이며 최우수 학생으로 뽑혀 총장이 주는 장학금 등으로 학비를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두딸이 이렇게 된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6시만 되면 아이들을 깨워서 공부를 하게 했는데,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해서 아침마다 씨름을 했다고 한다.
손씨는 자신이 한 일은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준 것 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매일 아침6시에 일어나야 하는 딸들의 고통은 그렇다 치고 매일 아침 몸을 가누지 못하는 딸들을 깨워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지금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다. 왕 다음의 실권을 쥐고 있는 권세가이다.
이집트 왕은 요셉에게 이집트 땅 어디든지 원하는곳에 가서 아버지와 형제들을 살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궁전이 있는 시내에서 사는 것이 앞으로 장래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가장 호화롭고 번영된 도시에서 살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고센이라는 시골로 보내서 짐승을 기르게했다. 요즈음처럼 낙하산 인사로 형들을 여기저기 요직에 등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셉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집트의 문명에 깊이 빠지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다.
요셉은 어떻게 해주는 것이 이들이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은 하나님의 성실함에서 나온 것이다. 고통은 죄를 깨닫게 하고,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서로 사랑하게 한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고통 중에 괴로워할 때 주님은 더 큰 고통과 아픔을 겪으신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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