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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십자가부터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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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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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는 한 사나이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주님이 더없이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이었다.
이를 본 사나이는 주님께로 달려가서 십자가를 대신 져 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주님은 그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실 따름이었다. 사나이는 또 다시 주님께로 달려가 간청했다.
“주님 제발 저에게 십자가를 넘기십시오” 그러나 이번에도 주님은 그를 모른 체 하시며 십자가를 양어깨로 무척 힘들게 걸쳐 메고 묵묵히 걷기만 하셨다.
사나이는 가금이 아프고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주님 곁을 따라붙으며 십자가를 넘겨달라고 다시 한번 애원했다. 그러자 주님은 여전히 십자가를 양어깨에 둘러멘 채 발걸음을 멈추더니 사나이에게로 몸을 돌리셨다. 그러고는 사나이가 주님을 처음 목격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이것은 내 십자가란다. 네가 조금 전에 내려 놓은 네 십자가는 저기 있지 않으냐? 내 십자가를 져 주려고 하기 전에 네 십자가부터 져 나르려무나” 그 사나이는 뒤로 돌아 주님이 가리키신 지점으로 달려가 보았다. 거기에는 자기 십자자가 모래 바닥에 나둥그러져 있었다.
그는 얼른 그 십자가를 걸머지고 주님이 기다리시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와 보니 놀랍게도 주님의 어깨에 걸려있던 십자가가 온데간데 없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는 어디로 간 겁니까? 사나이가 주님께 물었다. 주님은 방긋이 웃으며 대꾸하셨다. ”아들아 네가 사랑으로 네 십자가를 질 때는 내 십자가를 지는 것이나 진배없단다“
십자가 다음에는 쉼표가 없다. 십자가는 계속적인 사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자기 십자가는 의식하지 않은 채 남의 십자가에 간섭하거나 주님의 십자가를 동정하려 하는 섣부른 행동을 일삼을 때가 많다. 로마의 응변가 키케로는 십자가에 대한 고대 세계의 태도를 이렇게 요약했다.
“십자가를 로마 시민사회로부터 제거하라. 십자가라는 그 단어를 그의 마음속과 눈과 귀로부터 제거하라”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형틀이었으면 그렇게 외쳤겠는가?
당신은 원한다면 십자가를 보지 않으면서 일생을 살 수도 있고 또 원한다면 그것을 생각 할 수 도 있다.
당신을 그것을 피할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있다,
당신을 그것에 저항할 수도 있고, 순종할 수도 있다.
당신은 그것을 질질 끌고 갈 수도 있고, 기쁘게 질 수도 있다.
또한 당신을 그것을 성급히 내려놓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때가 오도록 기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기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그것을 묵묵히 즐겁게 지면서,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참으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러한 사람에게 그 십자가는 바로 그 영혼을 치료해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또한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학교이며, 그의 제자 된 표시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의 표시이며,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이며, 모든 약속들이 성취되는 기회인 것이다.
십자가는 하늘에의 사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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