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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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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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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기독교의 지도자 한 인물의 족적을 찾아나섰다. 먼 길이지만 오랜만에 교우들과 함께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전 날까지만 해도 날씨가 걱정되었는데 이른 아침 맑은 하늘은 모든 염려를 씻어주었다. 5월 초에 느낄 수 있는 청명하고 풋풋한 느낌의 날씨는 가슴이 벅찰 만큼 깨끗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온 몸으로 나를 품어주는 듯 했다.
오랜만에 찾는 길은 설렘이 앞섰다. 지나는 길목에는 이른 봄에 피었던 꽃들이 이미 꽃잎을 떨군 상태다. 하지만 이제 막 자라나는 대지의 생명들이 마냥 좋아라 할 수 있을 만큼 싱그러움을 더하면서 자라고 있었다. 심산유곡 한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남궁 억 선생의 기념관과 묘를 찾아가는 길은 처음 찾는 길손 일지라도 전혀 낯을 가리지 않게 한다. 이 나라 어디를 가든지 푸근함을 느끼는 것은 역시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인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상쾌한 여정이기 때문이었을까, 먼 길이지만 지척인 듯 이내 도착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서일까. 낯이 섧다. 주변 환경과 건물들이 많이 바뀌었다. 그만큼 무심하게 지내온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것 아닐까.
그곳엔 남궁 억 선생의 말년의 생애와 그 족적이 남겨져있다. 새롭게 기념관도 만들어져있다. 여러 모양으로 공원도 만들었고, 그가 세웠던 예배당도 복원해 놓았다. 찾는 이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둘러보고 있는 동안 지나던 사람들이 예정에 없었던 방문을 했다. 알고 찾아든 것이 아니라 지나는 길에 웬 기념관이 보이니까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찾아든 것이다. 대부분 남궁 억 선생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것임을 그들의 생경하게 느끼는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럴 듯한 기념관과 뭔지 모르지만 뭔가 있을 듯 한 분위기에 찾아든 것이리라.
남궁 억 선생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정치인, 언론인, 교육자, 장로,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결코 빼놓을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인물이다. 나라가 패망해 가는 상황에서 나라의 소망이 후손들의 교육에 달려있음을 깨달은 선생은 교육이야말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교육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을 무지로부터 구원해 내는 것이야 말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몸소 교육일선에서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일과 함께 헌신했다.
그는 국운이 기운상황을 바라보면서 백성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서 교육과 함께 계몽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신문(독립신문, 한성신문)을 발간하는 일에 동참했다. 또한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조선이 주권국가임과 침략의 부당성을 제기하면서 저항했다. 결국 선생은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 노구(老軀)에도 일경에 당당하게 저항하면서 이곳에서 독립정신을 심는 일을 했다. 묵시적으로 의미를 담아 무궁화를 보급함으로서 국민들에게 국가관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을 했다. 그렇게 말년을 보내던 선생은 끝내 고문의 후유증으로 별세의 길을 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마저도 그가 신앙의 선배로 이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였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지은 찬송가 가사(찬송 371장 삼천리반도 금수강산)는 알고 있지만 정작 작사자는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신앙의 선배요 민족의 선각자였던 선생이 남겨준 신앙의 유산을 소홀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것도 현대의 병이 아닐지. 무엇이든지 자신과 관계가 없으면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현실인 것을 어찌해야 할는지.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기억하는 수고도 기쁨이어야 할 것이다.
함께한 교우의 표정에도 생경하다는 표정이 읽힌다. 미리 이야기는 했지만 그들의 의식에 굳이 선생에 대해서 찾아보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봄맞이를 함께 떠나면서 겸사해서 신앙의 유산을 찾아보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떠나는 이들의 마음엔 닿지 않았던 것일까. 굳이 알아보고 싶다는 의욕이 보이지 않는다. 낯이 선 역사 속의 한 인물에 대해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인가, 덤덤한 표정에서 조금의 짜증도 보인다.
현재는 과거를 통해서 있는 것이고 현재는 미래를 열어가는 시작이기에 과거를 모른다면, 그리고 과거를 통해서 계승해야 하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현재도 미래도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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