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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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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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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가뭄이라고 할 만큼 금년의 봄 가뭄은 심각했다. 1967년도 가뭄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논에 심은 벼는 가뭄 때문에 말라죽어갔다. 농민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디든 물이 있다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 짐이라도 길어다 심겨진 벼에 바가지로 조금씩 주었던 기억이다. 마을의 공동우물도 말라서 집집마다 순서를 정해 24시간 우물을 지키면서 가족 수만큼 할당된 물을 길어야 했다.
물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의 근원이다. 물이 없이는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못한다. 물이 없으면 생명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TV를 통해서 물이 없는 악조건에 살고 있는 생명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절대 가뭄이 있는 곳에서도 물고기와 동물들이 살고 종족을 번식시킨다. 식물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사막의 메마른 대지에서는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잠깐이라도 비가 내린다면 틀림없이 온갖 풀들이 잠에서 깨어나 수분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 서둘러 싹을 티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사막의 생명들은 밤새내리는 이슬을 받아 생존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생존방법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메마른 곳이지만 비가 내리는 순간 대지의 생명들이 깨어나는 것은 경이롭다. 그야말로 기적이다.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어디에 있다가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지 놀라울 뿐이다. 악어나 물고기들, 곤충들도 마치 겨울잠을 자듯이 물이 없을 경우는 흙속에서 살아남아 있다가 비가 오면 깨어나 종족을 번식시켜 생명을 이어간다.

갑자기 어디선가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맹꽁이들의 합창소리다. 봄내 맹꽁이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말이다. 집근처에 있던 논과 습지들이 그동안 밭으로 많이 바뀌었다. 야금야금 개발의 필요성을 앞세워 주변은 도시가 들어섰다. 이곳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땐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온갖 개구리와 맹꽁이들의 합창소리는 공해라고 할 만큼 시끄러웠다. 하지만 해를 거듭 할수록 녀석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없어졌다. 언젠가 부터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한 녀석들의 서식지는 인간들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녀석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체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맹꽁이들의 노래 소리는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긴 가뭄 끝에 비가 한보지락 내리는 밤, 이제는 낯이 섧다고 할 만큼 생소하게 된 맹꽁이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하면서 창문을 열었다. ‘정말 녀석들이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들은 소릴까?’ 주변의 무논과 습지, 개울, 웅덩이가 사라진지 오랜데 녀석들이 어디에 살아있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겨우 남은 공간 어딘가에 숨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가 내리는 비에 만들어진 웅덩이에서 참았던 숨을 쉬는 것일까? 많지 않은 개체지만 소리가 우렁차다. 분명, 녀석들은 숨을 죽이고 살아있었다. 그리고 내리는 비를 반갑게 맞으며 노래를 하는 게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는 게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내리는 밤, 봄내 한 번도 노래를 하지 못했던 녀석들이 단체로 합창을 한다.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이었지만 흙속에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던 녀석들이 깨어나 반가움으로 힘차게 노래를 한다. 얼마나 반가운 소린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소리인가. 맹꽁이의 존재를 잊은지 오래건만 녀석들이 살아있어 나를 놀라게 한다.
녀석들은 인간들에 의해서 쫓겨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에 따라서 어딘가에 살아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어떻게 살아남았단 말인가. 그저 살아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인간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녀석들의 터전을 몽땅 파괴했기에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마저 없어졌건만 녀석들은 살아있었다.

잠시 한국교회를 생각한다. 최악의 조건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숨어있다가 때를 따라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맹꽁이처럼 더 이상 세상을 실망시키지 말고 모든 사람의 마음까지 돌아보며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으로 살아났으면 좋겠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살아있는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아픔의 날이 있을지언정 그 생명의 아름다움을 세상과 함께 나누면서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어쩌면 망신창이 되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어느 날 모두가 감격하는 모습으로 다시 한국교회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을 꿈꾸어본다. 더 늦기 전에, 그래도 어딘가에 진리가 남겨져있는 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없이 외쳐지는 설교가 공허한 소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설교는 신자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설교자 자신을 향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외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그 소리에 순종하는 사람은 뵈지 않으니 공허한 소리일 뿐인가.
참된 교회는 말씀이 말씀되게 그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진다. 참된 신앙은 말씀의 권위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데 있다. 또한 말에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는 멸종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맹꽁이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날 내게 주었던 것이 감격이었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깨어나 온누리의 생명들에게 감격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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