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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외톨이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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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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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소식들이 전해진다. 백주의 길거리에서, 대중이 이용하는 편의점에서, 혹은 가정집 안에서 특정인이 아닌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원한관계에 의한 특정인이 범행의 대상이 아니라는데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있듯이 날벼락을 맞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불신과 불안 때문에 최악이 될 수밖에 없다.
한데 이러한 범죄가 왜 갑자기 많아지는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해서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들이 모두 우발적이거나, 아니면 특별한 원한 관계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고,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소외된 약자라는 것과 그 중에는 외톨이로서 스스로 이웃이나 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 공통된 것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더 이상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소외된 상태에서 자포자기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예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외톨이로 지내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폭발한 현상인 것이다. 그 상황에서 맞닥뜨린 것이 피해자들인 셈이다. 그러니 피해자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특별한 원한관계가 아님에도 단지 그 순간 범행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니 말이다. 그로 인해서 가족들과 지인들이 받을 고통과 충격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피해자와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그러한 범죄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가 두려움과 불신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사회생활에 대한 또 다른 어려움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한 범행은 반복되고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상대적인 약자들은 점점 은둔형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때문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친다면 어리석은 일이고 그것은 개인만의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 어려운 문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웃과의 관계마저 불신과 경계의 벽이 높아지게 될 것이고,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 약자들은 더 외톨이가 되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결국 상대적인 약자들만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회 전체도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문제로 비약할 것이다. 가끔 외신에서 총기난사로 인해서 몇 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총기를 개인이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지 그러한 범행을 저지른 이들과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즉 이제는 남의 나라에 있는 특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들은 모두 외톨이였다는 것이 단서가 될 것이다. 외톨이의 문제가 이젠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가 공적으로 상대적인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 상대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교회에 주어진 본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에게 주어진 직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돌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여정에서, 그리고 그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가운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고아와 과부들에 대한 특별한 말씀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돌봄을 계명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이것은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을 전제로 약자들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사건이 있는 곳에 범인이 있고, 범인이 있는 곳에는 그들만이 홀로 있었다는 공통점은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에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분도 생각하게 된다. 약자를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것으로 자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공동체의 지체로 여겨 함께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한국의 경우 국가적 정책에 의해서 사회적 공동체가 파괴된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그나마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회이어야 한다.
한데 교회마저 공동체로서의 기능보다는 특정한 목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단체정도로 기능을 하고 있기에 외톨이들을 품을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교회가 세상에 있어야 하는 것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를 통해서 양육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함께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완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하신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의식이 준비되어야 한다. 자신만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준비가 구체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톨이들의 최후는 곧 우리 자신의 최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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