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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벤이 남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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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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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시간들이 지났다. 강력한 태풍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심산으로 달려온 볼라벤은 한반도를 삼키려는 듯 기세를 꺾지 않은 채 달려들었다. 며칠 동안 흐리고 간간이 비를 뿌린 것은 경고였는가. 이어지는 바람이 차츰 세차지더니만 본색을 드러냈다. 깊은 밤에 달려든 녀석은 잠을 설치게 했다.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분노를 폭발시키듯 몰아쳤다.
방송에서는 태풍에 대비하는 요령을 종일 반복해서 내보냈다. 그래봐야 원론적인 대피요령이다. 산사태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피요령을 숙지시키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다.
몇 년 전 태풍으로 인해서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공포의 시간을 경험했기에 이번엔 텔레비전 방송이 제시하는 말을 나름 잘 듣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테이프를 유리창에 붙이거나 젖은 신문지를 붙여서 태풍에 대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띌 만큼 많았다. 태풍이 지나는 동안 대형 유통회사들이 내놓은 판매된 물건들을 유형별로 정리한 자료가 보도되는 것을 보니 테이프 판매량이 엄청났다. 유통회사들에게 효자품목으로 지목될 만큼 테이프가 많이 팔렸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다.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태풍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긴장했다. 그러나 사람이 태풍 앞에서 준비한 것은 테이프와 젖은 신문이 전부였다. 태풍이 이 사실을 몰랐으니 망정이지 알았다면 인간이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그야말로 탱크 앞에 맨손으로 맞선 초라한 몰골이 아니겠는가. 집집마다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인다, 젖은 신문을 붙인다고 하여 법석을 떨었으니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한데 태평양에서부터 달려온 녀석이 너무 먼 길을 달려와서 지쳤는지, 아니면 테이프와 젖은 신문지를 들고 자신 앞에 선 인간이 불쌍해서였는지 알 수 없으나 아파트에 피해는 크게 입히지 않고 지나갔다. 테이프를 붙여놓고 밤새 잠을 설치면서 태풍이 지나기를 기다린 인간은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후폭풍마저 두려움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손에 들려있었던 것은 겨우 테이프였고, 젖은 신문이 전부였다.
한편 농촌에서는 태풍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사히 지나기를 바랄 뿐이다. 과수농가나 시설재배를 하는 농민들은 태풍의 처분을 바랄 뿐이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특별히 없다. 결국 태풍이 지난 길목의 농가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시설채소나 비닐하우스에서 양계나 육계를 사육하던 농가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또한 과수농사를 하는 농가에서는 피해가 더 컸다. 이제 수확을 앞둔 배와 사과 그리고 복숭아는 대부분 떨어져서 그 피해가 엄청나단다.
태풍이 지난 자리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인간의 몰골은 참으로 작은 것이었다. 겨우 비닐 테이프와 젖은 신문지를 들고서 태풍과 맞서야 하는 인간의 모습, 아니면 맨손으로 태풍 앞에서 단지 비켜가기를 소원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은 최첨단의 기술을 개발했다고 연일 말하고 있는 인간 자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태풍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모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볼라벤은 지나갔다. 녀석이 지난 자리에는 많은 흠집이 생겼다. 흠집만큼이나 인간의 한계도 분명하게 남겼다. 비록 신문지에 물을 적셔서 유리창에 붙이고 오는 볼라벤을 맞았지만, 테이프로 그 위력에 맞서려고 했지만 이제는 다 지났다. 하지만 젖은 신문지 떼어서 폐지로라도 정리해야 했고, 테이프는 재생할 수도 없으니 다 모아서 쓰레기로 처리해야 했다. 일회용으로 쓰였던 신문지와 테이프는 더 이상 어떤 기능도 할 수 없으니 이제는 쓰레기로 남겨졌고, 끝내는 폐기물로 처리를 해야 한다.
볼라벤은 그렇게 폐기물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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