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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통하는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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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우 선교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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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선교사

‘S’ 부부와 촛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필자는 우선 이런 저런 가정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자녀에 대해서 물었을 때, ‘S’는 얼굴이 조금 어색해지더니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예수를 믿기 전에 그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교회를 막 다니기 시작하던 시기에 첫 부인을 버려두고 지금 여자와 또 살림을 시작하였다. 그 후에 세례도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신앙인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중결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데려와 잘 살고 있는 여자를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몇 년 후에 산을 떠나 시내로 내려올 때, 새로 결혼한 아내만 데리고 내려왔다. 첫째 아내는 그냥 산에 있으면서 자녀들을 키우는데, 이혼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그냥 그대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도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중으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웃들도 그런 사람들과 그냥 어울려 살고, 사회적으로 아무런 규제도 가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첫째 부인과 둘째 혹은 셋째 부인과는 다른 지방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산족들 가운데는 아예 한 동네서 사는 경우도 있다. 똑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태국 사람들이 결혼신고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갈라서기도 그만큼 쉽고 해서 맘에 맞아 같이 살다가 헤어지고 한 동네의 다른 남녀들과 만나서 곧 살림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기독교의 가르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다가도 그런 일로 해서 교회를 못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S’의 경우는 그래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그가 모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계속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있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죄를 고백하는 마음으로 필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이러고 있다.”고 하고는 말을 맺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펀뜩 에스라의 개혁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둔 사람들은 그 자녀까지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난 후 속건제를 드렸다는데, 그러면 필자도 이 사람에게 ‘한 아내만 인정하고 다른 아내와는 헤어져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회개하라고 소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한 여자를 보내야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지금 살고 있는 둘째 여자여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결론도 내릴 수가 없었다. 정히 둘째 부인과 살려면 차라리 첫째 부인을 보내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쳐진 첫째 부인에게 돌아갈 상처와 그 앞날에 가중될 생활고는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이라면 당장 회개하라고 강요하고 교회에서 징계를 내릴테지만 여기의 문화 속에서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네 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던 야곱이 살던 시대와 문화 속에서 인정되던 일이나, 그보다 더 여러 명의 아내를 데리고 있었던 다윗과 솔로몬에 대해 성경은 나무라지 않았다. ‘S’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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