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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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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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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8.>

‘negative’라는 말은 어떻게 쓰이는가에 의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담는다. 형용사로 쓰일 때는 부정적 혹은 소극적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요즘 매스컴을 통해서 전해지는 소식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소위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다. 상대 후보의 약점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쳐서 흠집을 내는 일이다. 결정적으로 후보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있음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인 것 같다.
12월에 있을 대선을 앞에 두고 대통령 후보들을 결정하고 득표를 위한 각각의 전략을 세우느라 법석이다. 또한 후보는 아니지만 뭔가 선거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나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현상이 나타남과 함께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돌출언행을 일삼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에 찬 목소리로 증언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예나 다르지 않다. 자신 있게 상대의 치부나 약점을 이야기 한다. 기자들의 눈과 귀는 발표하는 사람의 숨소리조차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잔뜩 신경을 고추 세우고 있다가 마치 흡입하듯이 기사화해서 전달한다.
그러한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정작 그 사람의 정치적 능력과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인지에 대해서 살피고 분석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엉뚱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정작 후보자의 정책이나 비전에는 관심이 없다. 또한 후보자가 가지고 있는 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에 대한 검증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 집중하게 하는 역기능만 남기고 만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완전하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가 될 사람은 세상이 없다. 다만 어떤 허물이 있다고 해도 진정한 정치 지도자로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백성들의 안녕과 질서, 넉넉한 경제생활을 지켜줄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발표되는 내용을 보면 빈 깡통과 같다. 국가의 안녕과 국민들의 생활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검증은 없다.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인물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지고 그 사람을 말하면 얽힌 스캔들 내지는 회자되는 사건과 관련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한 의식이 부정적으로 각인되고 결국 집단 따돌림과 다르지 않은 결과에 이르게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 된다는 식의 무차별, 무분별한 폭로들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다. 폭로한 내용의 사실 진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만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판단능력에 영향을 주어 ‘그 사람은 그런 사람 이래!’ 하는 식의 이미지가 형성됨으로서 심각한 판단장애를 일으키게 한다.
단지 표심을 잡고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네거티브정책은 국가나 백성의 미래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에게 자신이 없을 때 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비굴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을 밝힌다는 의미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밝혀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에 대해서 바르게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먼지를 털듯이 상대의 치부나 약점을 들춰내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발전적 비판을 동반하지 못한다. 다만 비판과 정죄, 그리고 왜곡과 따돌림, 아픔만 있을 뿐이다.
네거티브 전략이란 이렇게 사람들에게 부정적 의식을 형성시킨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의미에서 가능할 것이다. 무조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치란 국민과 함께 있는 것이지 국민이 없는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아니다. 그리고 정치의 목적도 국민을 위한 것이지 정치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선거전략도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른 정보와 함께 국민이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정책과 그 타당성을 분석할 수 있는 순기능적 전략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전략의 기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거티브전략에 목을 매고 있는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이것은 특정한 인물이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사람들이 함께 하는 세상에서 서로에 대해서 네거티브한 입장으로 대한다면 기쁨과 나눔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경계의 대상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마음이 나눠질 때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자신만 내세우거나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들춰내서 비판만 한다면 거기에는 보듬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당연히 함께하는 기쁨도 없다. 경계와 비판, 그리고 따돌림과 아픔만 있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자신 안에 담아서 나누며 섬기는 삶이다. 때문에 ‘너’의 부족함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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