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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위한 성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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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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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9.>


동성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다시 번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수용할 때 동성애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에 동성애를 위한 성경을 번역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 발상과 목적만으로도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러한 목적으로 성경을 번역했다면 결국 성경은 더 이상 성경이 아닌 것이다. 인간에 필요에 의해서 번역을 자유롭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성경으로서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내용과 의미를 변형시키거나 제한한다면 그때부터 더 이상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에서 동성애를 위한 성경(Queen James Version)을 번역해서 보급을 한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여러 기독교 단체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일을 대단한 업적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더욱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성경조차도 인간의 필요와 자기합리화를 위해서 얼마든지 변형시키고,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굳이 성경을 믿는다고 해야 할 의미가 있는가? 또한 성경을 경전으로 하는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을 무엇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 물론 동성애를 위한 성경을 번역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의 신앙에 성경의 절대성이라는 것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케리그마로서의 성경을 말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서 무오함을 믿는 것이 정통신앙이다. 이 신앙 위에 기독교가 세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인간의 필요와 상황에 맞춰서 번역을 하거나 제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현실의 기독교는 인간의 필요에 따른 성경번역과 신앙의 적용을 부르짖고 있다.
아직 한국교회에 전달되거나, 한국교회가 이에 동조하는 경향은 보이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전혀 없거나 이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안에도 나름의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는 것이 신학적 자유주의 신앙이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도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이러한 문제들이 이슈화 될 때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은 이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하면서 보급하려고 하는 반면에 정통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교회들은 거의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아닐지. 만일 동성애를 위한 성경이 한국에 보급되는 경우 한국교회는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그렇다고 몇 사람이 대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회가 동성애를 위한 성경을 인정하거나 수용한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로마교회가 자신들의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자의로 번역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기독교가 중세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왜곡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의 왜곡된 번역과 함께였다. 만일 성경이 왜곡되게 번역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가톨릭교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성경의 왜곡된 번역이나 필요에 의한 번역은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시킴으로 기독교 신앙자체를 변질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에 번역되었다는 동성애를 위한 성경은 기독교 역사에 뼈아픈 오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단지 동성애를 위한 성경이 아니라 사회적 욕구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 될 때 마다 아마 그 나름의 의미를 붙인 성경이 등장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과거에 크게 이슈화되었던 흑인신학, 노동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의 경우처럼 흑인을 위한 성경, 노동자를 위한 성경, 여성을 위한 성경과 같은 성경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교회의 현실에서 예수님은 흑인이었다고 주장하면 전도하는 집단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흑인을 위한 성경이 따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문제는 성경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번역이 된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부정하게 되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그 내용을 왜곡시키거나 제한 할 수 있는 것이 성경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절대진리로서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권위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 의해서, 그것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자들에 의해서 왜곡과 제한이 가능한 번역을 한다면 성경은 더 이상 신적인 권위를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접하면서 한국교회가 더 이상 이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교회 내에서도 성경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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