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성경속세상 분류

봄이 오는 날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퍽 여러 해 만에 봄나물을 캐기 위한 발걸음을 했다. 행장이라야 별도로 준비할 것이 없으나 마음의 준비는 필요했다. 매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형편이니 봄을 맞을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준비는커녕 지난밤도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느라 늦게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겨우 약속시간을 지키기에 바빴을 뿐 아무런 준비도 못했다.
결국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길을 나섰다. 준비를 못해서일까.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그저 창밖에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덤덤하게 느껴질 뿐 특별히 봄이라서 다가오는 느낌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지나는 과원들에서 이발을 한 듯 전정(剪定)한 과수들이 치장을 하고 있을 뿐, 깔끔하게 단장한 과수들은 곧 필 꽃을 맞으려는 듯 했다. 아직 산하(山河)는 무채색에 가깝다. 긴 겨울을 이겨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정도의 여유를 조금 보일 뿐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민 차림이다.
완연하게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풍경들을 뒤로 하면서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장로님 동생 내외와 연로하신 아버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미안마음이 앞섰다. 농촌은 바쁜 계절인데 불쑥 찾아와 누가 되지 않을지. 아니, 이미 누가 되었기에 미안한 마음에 몸둘바를 몰랐다.
인사를 드린 후 일행은 곧장 주변을 살피고 연장을 챙겼다. 사실 연장조차도 준비하지 않았다. 농가니까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별도의 연장은 준비하기 않았던 것이다. 연장을 빌려들고 바로 사과밭으로 향했다. 사과밭 주변에는 달래와 민들레, 냉이가 지천이었다. 무엇을 캘까? 처음 목적은 달래였다. 실하고 큰 것이 달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아내와 나는 각각 다른 것을 캐기로 했다.
아내는 민들레를, 나는 달래를 캐기로 하고 열심히 캤다. 워낙 실하게 자랐고 몇 년씩 묵은 터라 민들레도, 달래도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민들레의 경우는 뿌리가 얼마나 큰지 캐는 것 자체가 어려울 만큼 굵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달래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캐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들을 캐는 순간 그들이 주는 기쁨은 캐는 자의 몫이다.
다른 일행들도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캐는지 떠드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천에 민들레와 달래가 있기에 왔다갔다하는 이도 없다. 어떤 것이 나물인지 묻는 사람도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캐면 되니 말이 필요치 않았다.
적당히 캐면 될 것이련만 그만 캐자는 사람도 없다. 지루하다고, 힘들다고 짜증부리는 사람도 없다. 그저 캐는 재미에 푹 빠져서 일어서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심지 않았고 가꾸지 않았건만 녀석들은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해마다 봄이면 새싹을 내어 봄을 찾아나온 사람들을 맞아준다. 그동안 찾는 이들이 없어서 아쉬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만큼 컸는데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고 삐쳐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인간의 이기적인 것인지 모른다. 녀석들은 어서 빨리 나를 좀 알아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열심히 컸는데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만 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호미를 거뒀다. 그리고 잠시 과원을 돌아보았다. 누가 가꾸겠다고 하면 그렇게 잘 가꿀 수 있을지. 가꾸지도 않고 캐는 수고만 하면 봄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마음껏 느끼고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럼에도 그것은 그냥 자연에 있으니 은혜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땅에 나는 것이라고 해서 그냥인 것은 어떤 것도 없다.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서 허락하신 것들은 모두 인간을 위한 선물이다. 그냥이 아니라 그분의 섭리와 은혜로 주신 것이다. 한데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냥이라고, 자연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바구니에 가득한 나물을 보면서 그분의 은혜가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음을 보았다. 대 만족이다. 겨우내 눈과 추위와 싸우면서 자란 봄나물들은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봄이 오는 날 들녘에 나가 겨우내 추위를 이긴 봄나물들은 만날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흔하다고 하면 흔한 봄나물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감사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계절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바쁘지만 잠시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가까운 들이나 도심 주변의 하천변이라도 걸으면서 봄이 선물하는 들꽃이나 봄나물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씨를 뿌린 이도 없고, 거름을 준 사람이 없지만 저들은 잘 자라서 찾는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다. 지나는 길에 눈길만 한 번 주더라도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출퇴근 시간, 지나는 길목에서라도 봄을 준비하고 있는 녀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
봄이 오는 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니 주어진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봄이 다 가기 전에 어떤 것으로든 봄맞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