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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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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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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 주어지는 자유와 기쁨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기 까지는 쉽지 않는 갈등과 번민이 따른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한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잘못을 인정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욕구는 스스로 번민 가운데 빠지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번민은 고통이 더하여 진다. 때문에 끝내는 그 잘못을 감추려고 한다. 감추는 것이 번민과 고통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길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노력을 한다. 힘으로 하든, 포장을 잘하는 방법으로 하든, 아니면 아예 모르는 척 하든.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잘못된 행실이 드러나면 안 되기에 철저하게 감추는 작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이 생기고, 의혹에 의혹이 자꾸만 자라난다. 분명히 잘못된 것 같은데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로 의혹을 제기하게 된다. 그럴 때면 더 강하게 부정한다. 부정을 사실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황을 만들어낸다. 감추기 위한 지혜를 총동원한다. 그래도 안 되면 힘으로 밀어붙인다.

요즘 일본이 하는 짓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완전한 사람도, 국가도 없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잘못된 일을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죄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왜곡이고 날조다. 그것을 힘으로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정하면 할수록 더 큰 문제를 동반한다. 그리고 부정하는 나라는 결국 가장 부끄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럼에도 힘이 있은 한 부정하려고 한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부끄러움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다. 체면도 구겨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강하게 부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다. 인정하고 사죄하면 그 부끄러움은 사라진다. 그리고 이해도 구할 수 있다.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칠 때는 동정까지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매여서 번뇌하는 고통으로부터도 자유하게 된다. 그 기쁨을 모른다면 어리석은 것은 물론 아직도 어른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일본이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을 보면서 독일과 비교한다. 독일은 얼마 전에도 나치주의자들이 잘 못한 것에 대해서 반성하면서 잘 못된 것에 대한 처벌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독일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바뀌었다. 또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의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8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처벌하고 있고 사죄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다르다. 왜 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소인배(小人輩)의 의식을 넘어서지 못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죽는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게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 같지만 자신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힘든 것은 타락한 본성이 이성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할까?
역사자체를 부정하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분노하기에 앞서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세계로부터 부정될 텐데 말이다. 즉 부정은 부정을 낳을 뿐이다. 부정은 고통을 이어가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저들이 이제는 내놓고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왜일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그들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일본이 언제나 소인배 수준에서 벗어나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속히 그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서 아무리 소리를 지른다 한들 그들이 돌이킬 여지가 없다. 너희들 나쁘다고 소리를 지른들 그들은 쇠귀에 경 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자 하는 것만 선택할 터이니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그들보다 큰 사람이 돼서 타이르면 말을 좀 듣는다. 혹 듣기 싫어도 듣는 척이라도 한다. 상대가 강하다고 느끼면 결코 덤비지도 못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우선 살고보자는 심산으로 대한다. 이것이 일본의 역사이고, 그들의 본성이다. 그러니 일본이 반복하고 있는 짓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내하되 우리 스스로는 내적으로 강한 모양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만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저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도록 강해야 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큰 사람, 큰 국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저들의 어리석음까지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돌이키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해야 한다. 더 의연하게 저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큰 사람, 큰 나라가 되도록 하는 것만이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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