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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신비를 체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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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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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두 주간 전에 예배당 옥상에다 서너 가지 푸성귀를 심었다. 겨우 잎사귀 두 장 달린 어린 묘를 사다가 심었다. 포트에 키워진 묘이지만 ‘자랄까’ 하는 마음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심었다. 자주 돌보지도 못할 것이고, 물이라도 챙겨줘야 할 것이나 장담할 수도 없는데 과연 제대로 자랄지 걱정이었다.
그리고 꼭 14일이 지났다. 심은 후 며칠 지나서 둘러보러 한 번 올라간 것이 전부다. 살아있나 하는 마음에 둘러본 것이다. 한데 주일 점심시간에 싱싱한 채소가 쌈으로 올라왔다. 이게 웬 쌈이냐고 하자 옥상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다. 그렇게 많이 심은 것도 아니건만 보름 사이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던 것이다. 사람이 한 것이라곤 그것을 심은 것이고, 물도 겨우 몇 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새 녀석들은 놀랄 만큼 자라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신비다. 생명의 기적이다. 누가 사람의 힘으로 한 치의 키를 더할 수 있을까. 누가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들을 죽이는 것, 아니면 그 생명들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이용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마치 자신이 창조자 인양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명조차도 이기적으로 이용할 것은 생각하지만 생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면서도 자고한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역까지 넘보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가. 자연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바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간 자신의 모습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옥상에서 지난 두 주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물을 제대로 챙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일 살펴보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어쩌다 한 번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쌈 채소들은 잘 자랐다. 무성하게 자란 채소 잎을 수확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그 기쁨은 모두의 몫이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다. 잠깐 심는 수고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여러 명이 함께 기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흙과 물, 적당한 온도와 태양이 있으면 어디서든지 필요한 채소를 얻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먹을 수 있기까지는 누군가가 심고 관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 동참하여 수고를 한다면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기쁨이 더 할 것이다.
그러나 심어만 놓았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물을 주는 것이 전부다. 그 결과 모든 지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채소를 가득 얻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게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으시고, 그것을 변함없이 공급하시는 하나님은 작은 생명을 통해서도 이렇게 큰 기쁨을 주시니 감격할 따름이다. 부지런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먹을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쁨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자연이라고 한다. 그것을 단순히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그 목적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경우에 하는 말이다. 자연이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리고 그 섭리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며, 일이라는 사실 앞에서 감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기뻐하고자 하는 것을 통해서 만족하려고 하니 진정한 은혜를 맛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구를 탓하겠는가. 심은 지 보름 만에 맛보는 쌈 채소를 함께 먹으면서 새삼 놀라고 기쁜 것은 누구도 밤을 지새워 그것을 지키지 않았고, 자라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지만 먹을 수 있게 자랐다는 것이다.
비록 쌈 채소지만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그것을 자라게 하셨고, 먹을 수 있도록 하셨다. 누구도 채소가 자라는 데 있어서 특별하게 한 일이 없음에도 채소들이 잘 자랐다. 식탁에 올라온 채소는 그것을 먹는 이들에게 기쁨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보여주시는 것이기에 먹는 순간에도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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