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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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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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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3.8이라는 수가 눈에 띈다. 궁금증이 더해서 무슨 내용인지 살펴보았다. 그것은 지난 해 미국의 목회자들이 평균 한 달에 구입한 책의 수라고 한다. 전체 미국의 목회자들이 일 년 동안 구입한 책은 1천만 권에서 1천 3백만 권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목회자가 연간 45권 정도의 책을 구입한다는 계산이 된다. 매월 한 사람이 4권에 가까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많이 부러웠다. 목회자가 아니라도 국민이 책을 구입하는 것도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을 대부분 알 고 있으니 더 그렇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목회자가 책을 더 많이 구입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매월 4권의 책을 구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기에 부럽다. 단순히 장식을 위한 책을 구입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나 적어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책들을 매월 4권을 구입하고 그것을 얼마나 읽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에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매월 일인당 구입하는 책이 4권 정도라면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요즘 한국에서 열풍이 불고 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 지출하는 돈을 생각하면서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지출하는 돈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책값이 많이 오르긴 했어도 그 가치를 생각한다면 결코 아깝지 않은 것이련만 커피는 쉽게 마시게 돼도 책을 사기 위해서 서점을 찾거나 홈 쇼핑이라도 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한 주간에 마시는 커피를 계산하면 적지 않은 지출이 되고 있다. 물론 커피를 마시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쉼이 있기에 단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피가 주는 대가로서 쉼과 정신적인 위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는 지혜를 얻게 하지는 못한다. 지혜는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과 자연의 이치에 담긴 지혜도 있지만 그것 까지도 탐구를 통해서 인간의 지혜로 깨닫고 터득해야 한다. 지식은 탐구와 경험과 사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을 통해서 깨달음으로 완성된 책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지식을 얻게 한다.
따라서 책을 읽는 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실속이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평생을 통해서 깨달은 것을 독자는 단 몇 시간 만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일인가. 이보다 득이 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실속을 찾기를 원한다.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기다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몇 시간이고 기다려서 보잘 것 없는 것 하나를 받아도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한데 책을 읽는 것이 이렇게 실속이 있음에도 마다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굳이 다른 나라의 일을 예로 드는 것이 마땅치 않으나 뉴스로 전해지는 것을 보니 아쉬움이 크다. 미국의 목회자들이 일 년에 평균 45권의 책을 구입한다는 통계를 보면서 그저 부러운 마음이다. 평균이라고 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떨까? 미국의 일반 국민들이 구입하는 책은 이에 3/1에 해당한다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일반인들도 적어도 한 달에 1권 이상의 책을 구입한다는 말이다. 이 역시 미국 국민을 3억 5천만 명으로 봤을 때 상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식산업의 발전은 국력과 직결된다. 단지 굴뚝산업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산업의 열매로 주어지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나다. 개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책을 얼마나 읽는가에 의해서 개인의 성취와 기쁨의 내용이 달라진다. 개인이 누리는 기쁨도 달라진다.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지혜는 누림의 정도를 달리하게 한다. 때문에 어떤 책을 읽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신앙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신앙의 선조들의 경험과 깨달음과 지혜를 통해서 은혜 안에 사는 기쁨을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책을 읽는 것 아닐까. 먼저 깨달은 자들의 깨달음과 시행착오까지 배울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 때문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계산은 없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서 연구한 것을 단 몇 시간 만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더욱이 목회자는 지도자다. 지도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한 발 앞서서 배우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시간 속에서 한 걸음을 앞서 배우고 깨달아서 가르치며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목회자에게 배움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지도자 자신이 먼저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스로의 일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스스로가 만족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여유는 더 없게 된다.
지도자는 앞선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비록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일반신자들보다 앞선 식견과 지혜가 준비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당면한 상황들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 가운데 이 부분이 문제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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