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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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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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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시에 유럽에서 미국까지 중대한 임무를 띤 한 척의 작은 배가 대서양을 횡단하고 있었다. 특수한 임무를 맡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군함으로 갈 수는 없었고, 적의 눈을 속여야만 했기에 전쟁과 상관없는 민간 선박이어야 했다. 따라서 크지 않은 소형 선박이어야 했고,특수 임무를 위장해야 했다. 문제는 그 소형 선박이 그 크고 넓은 바다를 어떻게 안전하게 건너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불안했지만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임무였기에 항해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들이 떠날 때 한가지 위안이 된 것은 “우리가 항상 곁에서 함께할 것이기에 안심하라”는 약속이었다.
배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출항을 했다. 가는 동안 여러 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적함으로부터의 위기, 환경의 위기......그런데 그럴때마다 자신들에게 전문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고 있고 우리가 곁에 있으니 안심하라.” 그렇게 해서 이 배는 무사히 미국근해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상화이 되었을 때 자신들에게서 멀지 않은 지점에서 거대한 잠수함 하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종료되었다고 안심한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잠수함이 떠오르자 그들은 놀랐다. 곧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그 먼 바다를 무사히 건너올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바로 그 잠수함이 보이지 않게 저들을 호위하며 곁에서 함께 왔던 것이었다. 자기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지만, 잠수함의 보이지 않는 격려와 호위로 인해 그들의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실화야말로 복음성가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를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이 되신다. 존 웨슬리는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다”라고 외쳤는데, 하나님의 동행의 경우는 첫째, 실재적인 것이다. 그것은 성육신하신 성자께서 제자들오가 동행하실 뿐 아니라 항상 앞서 가심으로 증명되었다. 갈릴리 바다 위에도,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의 장소에도 늘 함께하셨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이고 직접적 동행은 하시적이고 특수한 경우에 한한다.
둘째는 구약적 방법으로서 어떤 형상이나 매개를 통한 방법이다.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동행하시고, 천사와 사자의 모습으로 동행하여 도우시고, 사자 굴이나 풀무불 속에도, 법궤나 가시덤불 같은 특정한 곳에도 임재하심으로 동행하였다.
셋째는 가장 성숙한 형태로서, 보이지 않지만 영으로서 함께해주시는 경우다. 하나님께서는 벧엘 광야에서 야곱에게 너와 함께해 주겠다 약속하셨고, 여호수아에게도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행은 거룩한 성령의 동행을 가리킨다. 또 이사야 41장 10절에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고 하셨다. 에녹은 200년 동안 성령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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