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위대한리더의인생법칙 분류

리더의 성품(4) - 덕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리더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성품과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성품과 능력 둘 중에 한 가지만 필요하다면 그것은 성품이다.
특별히 리더에게 필요한 성품 중 한 가지가 “덕”이라는 성품이다.
“정승집 강아지가 아프면 문병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찾아보지도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권세의 덧없음을 우리에게 교훈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실리만을 추구하고, 또 당시 토색을 일삼았던 벼슬아치의 부도덕한 권세의 덧없음을 탓하는 말이기도 하다.
덕이라는 성품을 지닌 정승이 선정을 베풀고 자비를 실천했다면 어느 백성인들 정승의 죽음을 서러워하지 않겠는가?
그런고로 권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품이다.
덕이 없는 권세는 덧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역시 성품이다.
유명한 음악가 모차르트를 우리는 잘 안다.
그는 정말 천재 음악가였다. 그래서 살리에리라는 음악가는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재능을 시기하기도 했다. 선천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그러나 그 재능에 성품이 없다는 역시 비극적일 수가 있다.
모차르트에게는 무덤이 없다고 전해진다. 그의 장례식 날 아무도 묘지에 가지 않아 묻힌 장소를 몰라서라는 것이다. 물론 날씨가 춥고, 진눈깨비가 쏟아진 탓이라고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천재였으나 평소 성품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평소 가까운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아내조차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평소의 삶과 성품이 재능에 비할 만큼 위대했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까?
권력도 중요하지만 성품은 더 중요하다.
재능과 명성도 좋지만, 덕을 쌓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공자는 자하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너는 학업을 닦아 덕 있는 군자다운 학자가 될지언정 인격(성품)이 없는 소인배와 같은 학자는 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아무리 학식이 있어도 덕이 없고 너무 난 체하여 모가 남으로 남의 지탄을 받는 학자는 되지 말라는 것이다.
전도서 7장16절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의인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덕이 없이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고 말한다. 덕이 없는 의, 덕이 없는 지혜는 스스로 패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이란 어떤 성품일까?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전10: 23-24절에 “누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해서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 하고 말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다.” (공동번역)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덕을 세우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덕성이다.
사도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일평생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린도전서 8:13)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다. 내가 옳아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내 것을 바꾸는 것이 덕성이라는 성품인 것이다.
종교개혁자요 성경학자인 M. 루터는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의 요소가 되지 않게 하는 마음가짐”을 덕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훌륭한 목회자요 성숙한 그리스도인답게 덕성을 향상하는 삶을 당부하였다.
“우리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보살펴 주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웃을 기쁘게 하여 서로 유익하게 하고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롬 15:1~2)
자기 유익보다 타인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 진정한 덕성이요, 인격적 덕망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배부르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은 배고프셨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고치는 데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다.
광야에서 굶주린 5천명 이상의 무리를 위해서는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행하셔서 5천명의 무리를 먹이셨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사단의 유혹에 정면 반대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일생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삶이 아니라 인류의 유익을 도모하는 삶이셨다. 그분의 삶과 성품은 타자를 위한 삶인 덕성이었다.
크리스천 리더들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하리라. 특별히 예수님의 덕성을 닮아 이 혼탁하고 강퍅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리더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