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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칭찬받는 리더 (1) 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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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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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누군가 혹은 어떤 것을 중요하다고 정할 때 특정한 기준을 채택한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도 중요한 것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계심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기준과 인간의 기준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8)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이 말씀을 통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기준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보는 것, 우리의 생각과 기준과는 다르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이 인정하는 리더와 세상이 인정하는 리더, 주님이 칭찬받는 리더와 세상이 칭송하는 리더는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주님이 인정하고 칭찬한 리더가 성경에는 나온다. 그는 다름 아닌 믿음의 백부장이다.
눅7:1-11에 보면 로마의 백부장이 나온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다. 사람들은 이 백부장의 지위를 보거나 특히 백부장이 그의 종에 대한 호의와 친절 그리고 백부장의 유대교에 대한 헌신 등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이 믿음만을 보시고 그를 칭찬하신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어떤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을까?
예수님은 겸손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믿음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7:6).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 7:7).
예수님께서는 그 백부장의 집에 친히 가셔서 고쳐주시겠다고 하는데도 백부장은 그리 수고하시지 않으셔도 된다고, 그리고 내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그리고 그 자신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미천한 존재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 ‘내 집’이라는 말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백부장의 집은 일반적으로 보아 훌륭한 집이다. 유대사람의 집과는 비교가 안될, 로마 고급장교의 집인 것이다. 화려하고 훌륭한 집이기도 할 것이다.
반면에 영적으로 보면, 자신의 집은 형편없는 집이기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겸손한 믿음의 고백을 주님은 인정하시고 칭찬하신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기에는 너무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그것에 벌써 예수님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 정도면 장로될 자격이 있다. 나는 목사될 자격이 있다. 나는 권사될 자격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벌써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하나님을 내 마음에 맞아들일 자격이 있다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하나님을 내 집에 모시겠다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이 백부장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높으심과 자신의 무가치함을 철저하게 깨달은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들어오시지 못하게 한데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랍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부장은 예수를 단지 유대의 훌륭한 랍비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한번 눅7: 6절 하반절을 보라.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는 예수님을 어떻게 불렀는가? ‘주여’라고 불렀다. 이 말은 노예가 자기의 주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7절상)
백부장은 계속해서 ‘퀴리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라는 말은 당신이 나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예수님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런 고백이 되는 것이다. 로마 황제 숭배가 극에 달해 있던 시대에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로마인들과 로마의 식민지 하에 있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로마의 황제를 ‘주’라 부르며 숭배해야만 했다.
그런데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로마의 황제가 아닌 예수를 ‘주’라고 부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황제를 거역했다는 이유로 면직을 당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백부장은 이런 모든 신변의 위협과 불이익을 알면서도 예수를 ‘주’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이 보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이다.
우리가 주님 앞에 인정받고 칭찬받는 리더가 되려면 지위, 식민지로 있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호의 이런 것들 보다는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는 겸손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님 앞에 칭찬받고 인정받는 리더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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