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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교수에게 듣는다. 분류

성령사역의 본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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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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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본 철(성결대학교 교수, 성령운동연구가)

*성령의 인도하심
그런데 성령의 인도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나요? 어떤 분들은 ‘성령의 음성(音聲)을 듣는다’고도 하던데, 모든 사람들이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선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입니다. 이러한 오해의 주된 요인은 ‘음성을 듣는다’는 의인적(擬人的)인 묘사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의 음성 듣는다는 것이 마치 어떤 사람이 나의 귀에 대고 말하듯이 그런 육성(肉聲)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는다면, 이 같은 신념은 우리를 아주 위험한 신앙생활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신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성령의 음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질문>
“교수님께서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은 귀에 대하고 말하는 육성도 아니며, 기도 중에 마음속에서 갑자기 떠오른 큰 충동이나 메시지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살아 계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감지하는 것이란 어떤 건가요? 교수님께서는 그것이 성경의 전체적인 정신에 비추어 보아야 하고, 양심적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질문이 모호하고 아니면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답변>
“우선, 저의 글을 신중히 읽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요. 자매님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말씀 드린 것에 덧붙여, 이는 곧 ‘깨달음’이라고 하는 차원을 함께 강조하고 싶습니다. 설교를 듣는 중에, 기도를 하는 중에, 일을 하고 있는 중에, 이 같은 진정한 깨달음은 종종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결국 우리의 영혼이 성실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섬기며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이 같은 깨달음, 즉 하나님의 음성이 늘 충만한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자매님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하고 계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닫혀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깨닫지 못할 때, 주님은 시련이나 환경의 변화 등을 통한 ‘더 큰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곤 하죠. 그러므로 늘 하나님께 영혼을 열고 그분과 동행하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은 언제나 자매님의 가슴을 설레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내적인 인도하심은, 성령을 모신 나에게, 특히 진리의 길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라고 하는 것을 마치 점쟁이가 족집게처럼 무엇을 알아 맞추고 앞날을 점치는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해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에게 나타나는 주관적인 신비체험에 너무 의존하여, 고대교회의 몬타니즘(Montanism)처럼, 어떤 내적 메시지나 충동을 무조건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여기서 몬타누스주의에 대한 설명을 좀 드려야 하겠군요. 몬타니즘이란 고대교회 때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교회의 세속화와 영적 침체에 대한 반동으로서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몬타누스(Montanus)는 주후 156년경에 요한복음 14장에 약속된 보혜사 성령이 자기에게 임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그의 추종자인 막시밀라(Maximilla)와 프리스길라(Priscilla) 두 여선지자는 그들의 남편을 떠나 몬타누스를 추종하였습니다. 그녀들은 특별한 형식의 예언과 계시가 그들에게 임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은 매우 극단적인 영성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강림을 매우 주장하였으며, 신자들에게는 새 예언이 주어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단식(斷食)을 즐겨 하였으며, 육식(肉食)을 폐지하고, 임박한 종말과 성결한 생활을 위하여 독신생활을 하는 등의 금욕주의를 그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엄격히 실천하였지요. 또한 그들은 성결한 자들만으로 교회를 구성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의 재림이 급박하였다고 전파하였으며, 마침내는 극단적인 시한부(時限附) 종말론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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