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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교수에게 듣는다. 분류

성령사역의 본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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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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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본 철(성결대학교 교수, 성령운동연구가)

몬타니즘 운동이 급속히 퍼져 마침내 소아시아의 감독들이 그 세력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60년 이후로 교회는 수차례의 회의를 열어 몬타누스주의를 비난하고, 마침내 200년에는 이단(異端)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몬타누스주의자들과 같은 집단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사실 고대교회에 나타난 몬타니즘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가 경직화될 때마다 언제나 제 2의 몬타니즘이 생겨날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역사의 교훈으로 깨닫게 됩니다.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형태의 분파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특히 현대 기독교계 내에서도 이 같은 성격의 집단을 보게 될 때 이를 일컬어서 네오-몬타니즘(Neo-Montanism)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제가 나누고 있는 주제인 성령의 인도하심에 관해서 말할 때, 물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개인적인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을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적 현상을 ‘계시’라고 표현해서는 안 됩니다. 계시란 하나님의 전 인류의 구원과 창조의 질서에 대한 초시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진리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로서,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진정한 계시는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신앙이 좋고 또 기도도 많이 한다고 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영적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너무 내면의 직관적인 감동으로만 간주하다보면 누구든지 그런 실수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실 크리스천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더 당연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실 수 있지만, 결국 이러한 인도하심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인도하심에 즐겨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나, 어떤 섭리적인 사건을 통해서나, 우연한 어떤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나,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에, 심지어는 휴식이나 잠자는 중에도 이 같은 인도하심을 끊임없이 주십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 마음속에서 주님의 특별한 뜻이 깨달아질 경우, 이를 가리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켜 온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는 표현 대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아무런 오해도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은 어떤 특별하고도 예외적이고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의 영혼의 본래적 기능을 활용하심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별다른 신기한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래적인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기능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의 기능을 통해서든 또는 외부적 요소들을 통해서든 어쨌든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일은 성령을 모시고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일이 되겠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옳게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분별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첫째, 그것은 성경의 전체적인 정신에 비추어 보아서 합치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정한 저자는 성령이시기 때문에, 같은 성령께서 서로 다른 뜻으로 나타내신다면 이는 하나님의 불변성(不變性)의 원칙에 어긋나는 그릇된 일이 될 것입니다. 둘째, 그것은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우리의 깊은 양심을 통하여 깨달아지기 때문에, 그릇된 혹은 불순한 내용의 메시지는 성령께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기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행 23:1). 그리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 24:16)라고 하였습니다. 크리스천이 언제나 양심을 청결히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양심의 거울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므로 양심의 기능을 활용하는 일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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