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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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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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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의미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을 받을 때부터 관계를 통해서 살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간을 이해할 때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리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이 관계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해석일 것이다. 분명히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인간이 독존(獨存)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통해서 생각하면 인간은 삶과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너’와의 관계가 없는 혼자만의 삶이라면 상대적인 존재들 가운데 하나 이상의 의미를 부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격을 갖고 있어 ‘너’와 ‘사물’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인간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비롯해서 ‘너’로서의 인간을 비롯해서 삶의 터전과 환경과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모든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뿐 아니라 그 관계를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관계’를 형성하는 ‘너’라고 하는 상대에 대한 인식과 존중은 필연이다. 즉 만일 인간 자신이 또 다른 자아로서 ‘너’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너’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게 되는 ‘나’도 존중받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존중하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러한 생각조차도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존중받기 원하는 만큼 ‘너’와의 관계에서 ‘그’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너’를 존중하는 만큼 ‘나’도 존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때 ‘그’도 마찬가지다. 그가 ‘나’를 존중할 때 ‘그’ 자신도 존중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누구든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이나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인간의 존재 양식과 함께 존재의미와 위치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도 스스로 존재의미와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것들은 인간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인간의 존재의미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존재의미를 관계에서 확인하도록 하셨다. 그 첫 번째 관계는 창조자이신 하나님과의 것이다. 즉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 관계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서 방황하게 된다. 아니면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표현한 것처럼 인간도 자존적 존재라고 착각하게 된다.
다음의 관계는 ‘너’와의 것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또 다른 인간, 즉 ‘너’와의 관계에 의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은 ‘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갖느냐에 의해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 보람, 행복, 감사, 기쁨 등을 느끼고 누리게 된다. 인간이 행복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이 관계가 없이는 확인하거나 누릴 수 없다. 비록 개인의 행복이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너’와의 관계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어떤 관계, 누구와의 관계, 특별히 인간이 존재하는데 있어서 근본인 창조주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거나 누리려고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창조주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너’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우리’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 확인이 분명하다면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며 어떤 관계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관계는 일방적일 때 상대적으로 ‘그’가 힘들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관계는 상호적일 때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에게 다가오셔서 ‘벗’이기를 허락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일방적이되 동시에 상대적일 수 있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즉 인간과 하나님은 동등하거 동격일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대적 관계로 표현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인간을 존재케 했다. 인간은 그 창조자의 권능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의미는 창조자인 하나님에 의해서 근본적, 궁극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허용하시는 은혜에 의한 것이다. 즉 인간은 비록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다가오셔서 인간을 자신의 상대로 여겨주셨기 때문이다. 격(格)에 있어서 결코 동등일 수 없지만 창조자 하나님은 지으신 피물로서 인간에게 자신의 형상을 주어 자신의 상대가 되도록 하신 은혜로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이 관계를 상실함으로 불행과 고통을 자처한 것이 타락이다. 그렇다면 믿음을 통해서 회복해야 할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은 독존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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