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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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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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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에서 ‘은혜’라는 말은 시작(태초)부터 끝(종말)까지 한 순간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만물의 시원(始原)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며 시작이고, 마지막이고 영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영원히 계신 하나님과 그분에 의한 창조에 대한 믿음을 근본으로 한다. 또한 단순히 창조적 사실만 믿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함께 그것에 부여한 의미와 목적, 그리고 그것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까지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세계의 주인공이다. 따라서 인간만이 창조자를 향한 은혜를 깨닫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따라서 모든 것을 통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은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뿐 이다. 그러한 사실을 전제로 생각한다면 인간은 신앙을 통한 사물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포함한 만물이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을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섭리에서 찾아야만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창조와 섭리를 믿는다면 피조물인 인간의 입장에서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결론에 이른다.
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것 하나도 은혜가 아닌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할 때 그것이 은혜임에도 은혜로 확인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감사와 감격을 동반하지 못하는 삶이 있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의식이 준비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에 차이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다면 한 순간도 은혜가 아닌 것이 없기에 감격하는 순간들을 고백하는 삶이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인위적이거나 종교적 명령에 의한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 목적과 함께 삶의 의미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삶이다.
지난 시간들이 만들어준 가을 들녘의 풍요로움도 비바람과 더위를 지친 듯 견디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더위를 겪어야 할 때는 그것이 싫었고 힘들었지만 그것은 단지 시련이 아니라 성장과 열매를 익히기 위한 과정이었다. 비록 인간은 더위가 버거웠고 비바람이 원망스러웠지만 하나님은 냉정하리만큼 인간들의 원망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태양을 작렬시켰고 비바람을 동원하셨다. 버거워하는 인간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그것이 없이는 가을의 결실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인간들의 버거워하는 모습을 애써 모르는 척하고 묵묵히 섭리의 손길을 쉬지 않으셨다.
하지만 누가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했던가? 누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던가? 그저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비바람이 몰아치면 노심초사 걱정과 원망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누가 무엇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이 있던가?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서도 늘 원망만 한 것이 지난 시간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리스도인이 은혜 가운데 충만한 모습으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깨어있어야 한다. 이 깨어있음은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인간에게 주신 목적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그것을 기뻐할 수 있도록 하여 피조물인 인간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기뻐하시겠다는 것이다. 피조물로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범사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할 대상이 하나님인 것을 고백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을 통해서 기뻐하시겠다고 하니 다시 감사할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앞에 깨어있어야 한다. 이 깨어있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며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자신의 의식 가운데 계시도록 해야 한다. 단지 종교적, 주술적으로 자신의 목적으로 위한 행위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세로 그분 앞에 서야 한다. 그러한 관계를 위해서 주신 수단이 기도다. 기도가 단지 자신의 목적을 위한 주술적 행위이어서는 안 되며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유지하며 깨어있도록 하신 수단이기에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그분과 동행해야 한다. 그 기도는 단지 자신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아 그것에 순종하는 모습을 동반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또한 그 깨달음을 기뻐해야 한다. 그 깨달음은 은혜를 알게 하는 것이고, 그 은혜는 감사와 기쁨을 동반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깨어있음은 필연이다. 깨어있음이 없이 은혜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은혜로 산다는 말은 단지 인간의 역할이 작고 하나님의 역할이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한 것이기에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그 은혜를 어떻게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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