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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텃밭이 가르쳐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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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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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일이다.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 가볍지 않았다.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이다. 수능추위라고 하는 말이 생길 만큼 입시를 위한 시험을 치르는 날이면 어김없이 추워진다. 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더 긴장하게 된다. 기도회가 끝난 후 잠시 수능고사를 치를 학생들과 격려하는 시간을 가진 후 헤어졌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은 다시 옥상으로 가 있었다. 예보에 다음날 아침에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몰아치는 바람이 갑자기 사람들로 하여금 한 겨울을 느끼게 하는 추위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먹고 베란다의 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봤다. 얼마나 추운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구러 마음에 생긴 걱정을 겨우 누그러뜨리고 잠에 들었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얼마나 추운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난밤에 생긴 걱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밤은 지났고 무가 얼었다고 하더라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체념과 함께 책상으로 돌아와서 앉은 채 잠시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내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옥상텃밭이 마음에 걸려서다. 수요일 저녁에 무를 뽑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부터 어제까지 제법 추웠기 때문에 옥상텃밭에서 자란 무가 혹시라도 얼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며칠 동안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셈이다.
배추는 영하로 내려가도 많이 내려가지 않으면 괜찮은데 무는 영하로 내려가면 얼기 때문이다. 작은 텃밭이지만 여름내 가꾸고 살핀 손길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섭리의 손길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살핌이 있었다. 그렇게 자란 것이 옥상텃밭의 무와 배추다. 그런데 갑자기 영하로 내려간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무를 뽑아서 들여놓아야 했는데 놔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오늘까지도 가보지 못했으니 이마저 마음뿐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지난여름 옥상텃밭에 무와 배추를 심었다. 상추도 고추도 자라서 매주일 일용한 식사에 보탬이 되었다. 여름작물을 걷어내고 가을을 준비하면서 그 자리에 무와 배추를 심었다. 여름을 나면서 물도 주고 살피면서 가을을 기다렸다. 이제 머지않아 수확을 해야 한다. 이미 고구마는 온 교우들이 한 번 먹었다. 얼마 심지 않았기에 많은 것을 수확하지 못했지만 옥상텃밭에서 고구마도 심어서 그것이 주는 기쁨을 모두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이제 남겨진 것이 무와 배추다. 마지막으로 수확할 것들이다. 김장을 할 때 수확을 해서 함께 겨울양식인 김치를 담을 참이다. 물론 용도는 상황에 따라서 사용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아마 옥상텃밭에서 수확한 무와 배추를 씻고 김장을 하는 과정에서 느낌과 기분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무나 배추가 제법 잘 자라주어서 김장용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재배했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탐스럽게 자랐다. 그런데 갑자기 추어져서 무가 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로 며칠을 보낸 것이다.
돌아보면 인간은 걱정만 했을 뿐이다. 옥상텃밭에서 인간이 한 일은 몇 번 물을 주고, 살펴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장 추워져서 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은 하지만 정작 그것에 대처하지도 못했다. 겨우 할 수 있었다면 걱정만 하지 말고 옥상에 가서 무을 뽑아서 실내로 들여놓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난여름 그것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쉬지 않고 태양과 바람, 적당한 비도 내려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옥상텃밭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지체가 높은 사람이든, 남달리 탁월한 재능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이든 식물을 얻는 과정을 배제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쌀을 얻든, 채소를 얻든 일용한 것을 얻는 과정은 누구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예비하여주신 것이다. 창조주로서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이 그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하셨지만 정작 그 은혜는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금년 가을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서 그분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옥상텃밭이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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