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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과 믿음의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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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태화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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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과 믿음의 인내

 

현대 사회에서 미덕으로 손꼽는 것은 단연 속도다. 뭐든 빨라야 한다. 주문에서 배송까지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속도다. 컴퓨터를 켜고 부팅까지 빨리 돌아가는 기기가 인기다. 기업에서 보고체계는 빠르고 신속해야 한다. 미디어 보도 경쟁의 성패도 속도에 달려있다. “빛의 속도”를 모방하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속도의 문화는 지금 문제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속도가 느리면 고객에게 바로 비난과 지적, 욕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속도 문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치명적으로 터져나온 사건이 있었다.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산에 오른 뒤 시간이 한참 흘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선민의 생존을 인도할 계명을 주고 계시는데 백성들은 그 시간을 참지 못했다. 왜 빨리 모세는 안오는 것인가. 왜 빨리 계시는 드러나지 않는가. 왜 빨리 증거는 주어지지 않는가. 백성들은 급기야 불안에 떨었고, 그 결과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을 수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선지자를 기다리고 계시를 기다렸더라면 백성들은 당당히 승리의 행진을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하지를 못했다. 약속을 기대하며 참지 못한 아픔과 비극, 비참의 결국을 그들은 심판으로 체험해야했다. 속도는 인내하지 못하는 증표의 뒷면인 셈이다.

이와 유사한 그림이 있다. S.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 작품은 현대인들의 허무한 행적을 묘사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행위와 동작은 약속이나 희망을 기다리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직시하게 한다.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신앙의 실존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속도에서 이탈한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내심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들은 권태와 무기력에 떨어진 채 오지 않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고도를 기다린다. 정작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대강절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것도 아주 깊고 깊은 믿음의 인내심이어야 한다. 구주가 육신으로 오신다는 탈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게 보이는 계시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리고 오랜, 아주 오랜, 인간적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오랜 시간 뒤에 오실 수 있다는 믿음의 인내심. 대강절은 구주의 첫 번째 오심을 기다리는 기간이다. 속도에 매달리다, ‘어라, 주님이 안오시나보내!’ 하고 돌아서는 이들이 되지 말고,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욥의 인내(약 5:11)를 품은 신앙인이 되어보자. 그러할 때 성탄의 기쁨과 찬양이 더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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