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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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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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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3.>

절제와 신앙

 

며칠 사이에 일어난 총기사건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과 같이 총기소지가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서 총기로 인한 사건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고, 우려하는 분위기도 크게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연이은 사건이라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염려가 크다. 게다가 갑자기 총기로 인한 살인사건이 이어지니까 총기관리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총기소지가 허가제고, 그것도 수렵기간에만 일정한 시간 동안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나름 총기관리가 엄격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비교한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하다. 총기를 소지하는 것 자체가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총기를 집에 보관하거나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렵기간 동안에만 일정한 시간 사용할 수 있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경찰관서에 보관해야 한다.

그럼에도 총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아침 신문에 이에 대한 분석이 실렸다. 두 사건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신도시개발과 함께 많은 보상금을 받게 되면서 갑자기 재력가들이 되었다는 것과 갑자기 현금을 갖게 됨으로 형제, 인척간의 불화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파출소에 유치해둔 엽총을 찾아다가 살해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까지 공통점이었다. 살해한 다음에 피의자들이 모두 자살했다는 것도 같다. 최악의 사건이고 사고 현장인 것을 알 수 있다. 대상과 관계는 다르지만 사건의 포괄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같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소유욕이다. 이에 대한 욕구가 없다면 사람은 일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유에 집착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관계나 도리마저도 부정하게 될 것이다. 필요에 의한 소유는 질서 안에서 해야 할 것이나 그것에 집착하거나 충동에 의해서 소유를 요구한다면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또한 집착은 이성적인 기능을 정지시키거나 통제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자신마저 부정하는 비극적 선택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사람은 필요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정당한 땀흘림을 통해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노동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원리이다. 하지만 땀흘림이 없이 다른 사람의 소유를 시기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원한다면 그 결과는 악을 낳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요한 것은 정당한 경쟁과 수고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공의가 존중되고 확립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억울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경쟁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반칙을 하게 된다.

이어서 생각할 것은 절제되지 않는 집착은 악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인 혈기는 이성적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성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 혈기는 악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동반한다. 결국 두 사건은 모두 피의자들이 통제되지 않는 충동을 총이라는 도구로 해결(?)했다. 또한 자신들도 그 총으로 자살을 했다. 누구에게도, 무엇을 위해서도 남겨진 것이 없는 비참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인간의 욕구가 절제되지 못할 때 남겨지는 비참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비록 이렇게 비참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집착과 혈기의 결과는 누구에게도 남겨지는 것이 없는 무익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임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절제(self control)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것은 은혜에 의한 신분의 변화로 만족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의 거듭난 신분에 합당한 형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생각은 물론 필요와 기본적인 욕구까지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강요나 강제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백을 통해서 기쁨으로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고, 그 말씀에 대해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이때 순종이란 역시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함과 그 말씀이 가지는 권위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조건에 의한 순종이 아니라 그것을 기뻐함으로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다.

감정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 때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격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까지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처럼 철저하게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능적인 욕구는 물론 상황에서 주어지는 격한 순간에서까지 인간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지킬 수 있고, 인간으로서 본분과 도리를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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