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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주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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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석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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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주되심”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고백되었던 기본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이며 이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본이 되는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장 기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14세기 영국의 학자 존 위클리프는 그 나라 안에서 국가와 시민 사이의 갈등을 연구하다가, 역사의 궁극적인 권위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며 교회의 조직과 질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연구하였습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의 발견을 통해서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나 사제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고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였습니다. 궁극적인 권위자로부터 나오는 교회의 권세는 교황 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믿음의 최종적인 근거인 성경을 탐독, 번역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위클리프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교황의 궁극적인 권위를 거부하며 성서의 연구와 번역에 노력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로랄드파(Lollard)라고 불렸습니다. 공식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랄드파는 지하운동으로써 국가전역에 걸쳐서 성경을 번역하고 반포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단에 의해 시험을 받은 후 갈릴리로 물러났다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했다(마4:12-16절). 이때부터 예수님은 이렇게 외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절) 회개라는 구체적 행위가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천국이라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기 천국은 죽어서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천국은 바로 사람들 코앞에 다가온 실체였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잃는다. 즉 여기 천국은 초월성을 지닌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땅의 나라 또는 인간 나라처럼 지금 이 세상에 내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신약의 하나님 나라는 다만 눈에 안 보일 뿐이다. 말씀과 성령에 의해 지금 이곳에서 통치되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지정학적 영역이나 경계선을 가진 세상 나라 즉 인간의 나라와 다르다. 영적 실체이다. 그럼 언제 하나님 나라는 활동을 시작했는가? 예수님이 답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절)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막9:1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두 사건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출발시킬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될 것(눅19:12절, 참조: 행2:35-36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 강림(행2장)을 통해 구속의 은총을 받은 인류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출생할 것이다(요3:3, 5절). 이 성구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영원성과 초월성이 아닌 현재성과 내재성에 근거를 둔다.

유감스럽지만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과 영원성만 강조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같을 수 없다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에 근거를 둔 잘못된 이분법 때문이다. 전형적 예는 구속사를 내재적 세속사와 분리시켜 초월적이라고 주장하는 바르트 신학이다. 사실 구속사는 세속사인데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속사와 전혀 다르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내재성을 강조한다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구원론과 교회론의 내용과 성격 자체가 바뀐다. 구원과 교회 자체에 올-인(all-in)하는 식의 목회학은 저절로 사라진다. 구원론, 교회론 그리고 목회학은 신국론에 봉사하는 시녀가 될 것이다.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신론, 인간론과 기독론(창1-3장) 모두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에 목표를 두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이 이렇게 개혁된다면 교회에서 목회자가 주인공일 수 없다. 교회에서 인간 중심의 번영 신학은 사라진다. 신비적 체험에 방점을 두는 뉴-에이지 같은 사이비 신학도 사라질 것이다. 대형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만 강조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죽음 이후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 장소로 바뀐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자연스럽게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인간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대신한다. 교회와 목회는 인간의 더러운 야심과 비전을 달성하려는 기업체와 그 활동처럼 되고 그런 교회에서 신자들은 양적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 못지않게 내재성이 강조되어야 하며 부활한 예수님이 구원주(Savior)임은 물론 주됨(Lordship)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 교회와 신학은 전자만 강조함으로 한쪽으로 치우쳤다. 교회와 신자들이 성화에 소홀하며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부활주인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이 세상에 활동하는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주임을 많이 선포하라!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지금 이곳 인류 사회에서 자신의 통치를 실현시키고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교회와 신자도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고 확장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세상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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