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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여백ㅣ 정찬성 목사의 토요일에 쓰는 편지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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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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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여름 목회가운

 

유 권사님, 엊그제 외부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난 데 없는 우체국 택배 배달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성의 만드는 곳에서 택배물품이 왔는데 어디에 두고 가면 좋겠냐는 것입니다.

해마다 정순현 유옥순 이옥선 등 선교 속 할머니 권사님들이 이맘 때에 넥타이 매지 않는 ‘목회자 셔츠’를 생일선물로 주문해서 여름을 나게 하는 일이 생각나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전에는 정순현 권사님이 주관하셨는데 이 어른이 교회에도 못나올 정도가 되셨는데 누가 주관하셨나 하면서 집에 와보니 전혀 번지수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목회자 여름 목회가운입니다. 가을 겨울에 입는 가운은 있는데 한 여름에 강대상에 올라갈 때 입는 가운이 없던 차입니다.

 

변장관의 선행, 목사가운 보내기

 

누가 이 가난한 농촌교회 목사의 엄연한 현실을 아시고 가운을 보내셨을까 자못 궁금해서 급히 개봉해보고야 그 장본인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내신 변 권사이시군요. 내 여름가운이 없는 것을 어찌 아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어 아내에게 추궁했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아무 생각 없이“우리 목사님은 일 년 내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는 일이 거의 없이 목회자 와이셔츠만 입고 지낸다”면서 여름 강단가운 걱정을 한 모양입니다.

80년대 초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의 가운은 검정색이었습니다.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만 그 후에 흰색으로 바뀌고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는 도포 모양의 감리교회 전용 아이보리 색 가운으로 또 바뀐 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가운위에 걸치는 스톨 또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목회 초창기에는 단순한 교회력의 네 가지 색에 단아래 술이 붙어 있는 정도였습니다. 소박하고 검소한 가운과 스톨이 개신교회의 자랑까지야 모르지만 전통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스톨 헝겊이 비단으로 공단으로 화려하고 비싼 천에 각 교단의 마크가 붙어서 교단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운을 파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은혜가 떨어지기 시작한 어느 시점에서부터 너나 할 것 없이 가운이 화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단도 무늬도 거기에다 목사보다 더 높은 팔때기에 줄무늬 들어간 박사 가운을 입고 강단에 서는 것이 더 자랑스러운 이상한 전통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봐도 빤히 아는 엉터리 목회학 박사학위를 가진 분들이 당신 강단은 그렇다고 쳐도 지방회 연회 총회의 성찬식 때도 그 정체성 적은 가운을 입고 성찬보좌를 하는 겁니다.

유 권사님, 저는 신학대학의 학위수여식에서 교수님들이 당신이 나온 대학의 박사가운을 입고 학문의 권위를 모아서 후학들을 격려하는 멋진 모습만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공적 성찬보좌 현장에도 그런 얼룩덜룩한 가운이 등장하고 이제 고착화되어 가는듯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형식만 강조된다고 했던가요? 목사가 섬기는 리더십으로 교회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그리고 성도들에게 최고의 대접을 받는 분위기가 이미 깨진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목사보다 박사가 더 훌륭해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이 준 학위가 더 큰 권위

 

하나님이 주신 안수보다 사람이 준 학위수여가 더 대접을 받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슬금슬금 박사를 주는 엉터리 기관들이 많아졌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미국 여행하듯 가서 몇 주 머무르면 학위를 받아가지고 오는데 학교에 내는 돈 얼마 그런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외국 신학대학과 협력해서 그 학교의 학위를 주는 대신에 그 학교의 교수가 한국에 나와서 집중교육을 하는 제도도 생겨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예 학위장사를 하기로 작정한 외국의 신학대학들도 있어 그 책임자를 한국에 상주하다시피하면서 학생을 모집하고 커리큘럼을 짜서 한국교수들과 공조하면서 학사운영을 하는 진화된 형태의 목회학박사과정도 생겼습니다.

유 권사님, 정 목사의 여름가운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가 옆으로 많이 흘렀습니다. 성직자의 가운이 화려했던 시절은 교회가 어둡고 은혜가 덜했던 시대였습니다.

유 권사님, 러시아 정교회가 가운과 스톨의 길이와 넓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심한 논쟁을 하고 있을 때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말은 시대의 아픔은 읽지 못하고 가운의 색깔과 크기 등 겉모습만 추구할 때는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선보이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목회가운은 여러분에게는 생소한 서울 사시는 한 권사님이 보내주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교회의 역할과 시대의 아픔을 직시하라는 의미로 받고 깨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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