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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령세례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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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령세례 이론

성령사역의 본질(17)

 

배 본 철(성결대학교 교수, 성령운동연구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체험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성령세례에 대한 교리는 그동안 신학적으로 상당히 다루기 힘들고 까다로운 주제로 인식되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각 교단에서 지지하는 신학 노선에 따라 성령세례에 대한 해석이 제각기 다를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모으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성령세례의 개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양분되어 설명되어 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거듭난 자에게는 누구나 성령이 내재(內在)해 계시며, 성령이 신자 안에 계신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성령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성경의 내용을 근거로 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

이 본문의 말씀과도 같이 크리스천은 이미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세례란 크리스천이 그리스도의 몸에 처음 접붙임을 받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일은 오직 성령의 중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중생은 성령세례의 결과이며, 따라서 중생한 자는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의 개념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은 성령세례가 중생과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구분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성령세례의 ‘세례’라는 말 자체가 물에 흠뻑 빠지거나 어떤 것에 몰입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성령에 의해 완전히 사로잡히는 체험에 강조를 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할 때 성령세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중생한 이후 한동안 시간이 경과한 후에 성령에 의해 세례 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성령세례는 중생과는 구분되는 경험으로 설명된다는 것이고, 따라서 성령세례란 중생할 때 신자의 영혼 속에 임하는 성령의 초기적 내재와는 구분하여 완전히 성령께 사로잡히는 체험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의 결과로 인해 중생했다고 해도, 여전히 크리스천에게 필요한 정결함이나 성령의 은사나 봉사의 능력 또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통치 등의 은혜를 얻기 위해 더 큰 성령의 능력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럴 때 구태여 성령세례를 구한다고 말하지 말고 성령 충만 또는 성령의 능력을 구한다고 하면 교리적으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 충만의 경험은 일생 동안 얼마든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을 교리적으로 따르는 교단들은 주로 웨슬리안-성결 그룹에 속한 교단들과 오순절교단들입니다. 그리고 아까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해석은 주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에서 취하는 노선입니다.

웨슬리안 성결운동에서는 전통적으로 성결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경험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중생에서는 성령의 초기적 임재가 있지만 성결의 체험을 할 때에 성령의 충만한 세례가 임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순절교단에서는 성령세례 받은 초기적 증거가 방언이라고 보는 교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역시 중생과는 구분된 체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노선에서는 중생 이후 첫 번째 성령 충만의 체험을 성령세례라 부르고 그 후의 체험들은 성령 충만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 여기서 웨슬리안-성결 그룹이라고 하면 주로 웨슬리신학을 강조하는 감리교나 성결교 또는 구세군 같은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교단은 순복음교회 같은 곳을 말하고요. 그리고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 노선은 장로교나 침례교 같은 곳을 말하는 거구요.

이런 단어들이 다 성령론의 전문적 용어라 그 개념을 파악하기가 그리 쉽진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노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성령세례에 대한 논의를 진전함에 있어서 불편이 없을 것입니다. 성령론을 공부하는 신학생들에게 있어서도 성령세례에 대한 용어와 정의에 대한 이해는 매우 까다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은 한 신학생과 나눈 대화의 내용입니다.

 

질문

교수님의 성령 충만에 대한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성령 충만과 함께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상대적으로 이 부분을 크게 강조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성령세례’라는 용어는 조직신학에서 크게 혼선을 빚고 있는 용어 중의 하나입니다. 북미에서도 Baptism of/with/in the Holy Spirit의 용법을 놓고 해석이 분분했지요. 그런데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성령세례를 중생 시와 연결시키는 입장과 분리시키는 입장이지요.

제가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가급적 자제한 이유는 용어 해석상의 혼란을 피하고 그 경험적인 실증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도 저의 연구는 가능한 한 신학적/교리적 오해의 소지가 있는 용어들을 피하고, 모든 크리스천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개념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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