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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강단여백/ 정찬성 목사의 토요일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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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강단여백/ 정찬성 목사의 토요일에 쓰는 편지

 

어린 시절 신앙의 못자리 전동교회에 갑니다

유권사님, 강화에서 태어나서 마리산 밑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으로 유학한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의 자식사랑에서 시작된 출애굽이었습니다.

힘든 살림에도 불구하고 요즘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쌀값일 때 한 달에 쌀 한가마니를 하숙비로 내고 인천에서 하숙을 한 것도 부모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돌아보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만합니다.

 

40년 만에 방문하는 인천 전동교회

그때 저는 송도중학교를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화수동, 송월동, 율목동 등에서 하숙을 했습니다. 외가댁에서 하숙을 하기도하고,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잠깐이지만 자취를 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섬기시고, 또한 저에게 첫 방언 은사를 받도록 가정집회로 인도하신 차보옥 권사가 나가시는 화도교회에 나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터인데 어떤 연유인지 저는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신학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전동교회에 나갔습니다.

전동교회는 저에게 청소년기의 신앙을 키워준 못자리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유권사님, 왜 이렇게 서론이 긴가하면 이 교회가 매년 창립기념주일이 되면 그 교회 출신 목회자를 초청해서 말씀을 듣는 그런 전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년 창립기념일에는 69-76년 초까지 나가던 전동교회에서 전동교회 출신 목사라고 저를 초청했습니다. 작년에는 감리교신학대학 교수인 유태엽 선배를 초청했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제 중학교 일 년 선배이신 사재신 형이 그 교회의 중직을 감당하는 장로가 되셨고 당시 담임목사님이셨던 박순종 목사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 친구 형윤이는 아직 집사이시고, 원종이는 하늘나라간지 벌써 40년입니다.

그 교회에서 사재신 형이 보내주신 <전동교회 60년사>를 살펴봐도 아는 분은 몇 분 안 되는 낯선 교회가 되었더군요.

몇 해 전 강화 예배군 훈련장 뒤편의 기독교묘지에 미국으로 이민가신 이학수 선생(당시호칭)이 묘지에 오면서 내가 가까이 있는 것을 전해 듣고 한번 만난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신앙생활을 같이 하던 여학생들 중에는 강화에서 목사님 사모님이 되신 분도 계시고, 장로부인이 되어 강화에 터 잡고 사는 권사님도 있습니다.

강화의 <산내들>이나 <갈릴리>란 펜션은 다 전동교회 출신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입니다.

아직도 인천기독병원 방문 찬양단 있나요?

중고등부 시절 신학교 학생들이 교회로 파송되어 세상을 알게 해준 교회가 전동교회였습니다.

제가 중고등부 때 모시던 선생님들 중에는 김광원 교수, 조은호 목사, 정대흥목사, 백철목사, 김혜원 사모, 임소희 사모, 김찬중 장로 등이 저희들을 가르쳐주셨는데 목사님, 사모님, 장로님이 되셔서 사회에서 만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유권사님 전동교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가운데 “인천기독병원 새벽송 찬양단”입니다. 청년부가 중심이 되고 고등부 학생 몇 명이 같이 참여하는 중창단입니다. 주일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부지런히 기독병원에 갔습니다.

층마다 새벽송 찬양을 했습니다. 어떤 방에서는 저희들을 불러들여서 찬송과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매주 신선한 헌신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번 기독병원신우회 성가대헌신예배 설교 때 옛날 40년전 추억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창립기념주일 설교 때는 요단강을 건널 때 바닥돌 12개로 기념비를 세웠던 출애굽기의 말씀을 중심으로 옛날 신앙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유권사님, 어린 시절 중학생으로 유학 가서 의지하던 교회와 신앙의 기념비를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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