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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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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전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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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22.>

큰 사람

 

지난 8월에 국가적으로 큰 사태를 경험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작은 한반도에 집중되었다. 외신들은 금방이라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것처럼 긴급뉴스로 타전을 했다. 정부에서도 긴박한 상황을 알리면서 대책을 세우느라 숨 가쁜 모습을 보였다. 대변인조차 긴박한 상황 때문인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남과 북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 시시각각 전해지는 가운데 군과 언론사들은 직면한 사태에 대해서 소식을 전했다.

48시간이라는 시간이 정해졌고, 그 시간을 지나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시간은 흘렀다. 정해진 시간이 불과 서너 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까지 양측은 어느 쪽도 양보함이 없이 충돌을 향한 일직선에 마주선 상태였다.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방송사들은 평론가,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출연시켜서 다음 상황에 대해서 예측하는 대담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부 대변인의 발표가 있었다. 불과 두 시간 정도 남은 시점에서 남북의 고위 당국자 회담이 판문점에서 있을 것이라는 발표였다. 그리고 발표한 시간에 양측의 대표가 모여서 일련의 사태의 해결을 위한 회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회담은 끝나지 않았다. 자정을 넘어서 새벽이 되어도 끝났다는 소식은 물론 어떤 내용을 의제로 한 회담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회의는 무박 4일, 48시간이라는 긴 회담 시간의 기록을 남기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북한은 일촉즉발의 전쟁의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위협수위를 높여갔다. 잠수함과 해상침투용 보트를 접경지역으로 이동 배치시켰다. 그런가 하면 휴전선 일대에 포병을 집결시키면서 전면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준 전시상황을 강조하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포격을 가하겠다는 협박도 전해졌다.

무박 4일간 회담을 한 결과는 현 긴장상태를 상호간 합의하에 평상시 상태로 환원하는 것이었다. 4일간의 군사적 긴장을 초래했던 상황이 종료되었다. 군도 국민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긴장이 고조되면서 증권시장에서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는 현상도 있었으니 그에 따른 손해도 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끝났다.

정치적인 것들에 대한 해석은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니 여기서 논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었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과거에 이번 사태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국민들이 우왕좌왕하고, 남남갈등이 커지면서 정치권에 대해서 찬반을 주장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국민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남남갈등도 없었다. 사재기나 도피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북한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니 북한 방송들은 남한의 국민들이 외국으로 도망가고 있다느니, 물건사재를 하느라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느니 하는 거짓 소식을 만들어서 전했으니 말이다. 정작 남한에서는 없었던 일인데 그렇게 거짓 소식을 만들어서 전했다는 것은 그들이 기대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남한의 국민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이 되자 더 이상 긴장상태를 지속하거나 최악의 상태를 만들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협상을 제안했고 합의문을 만들어내게 했다. 이것은 정치인의 역할은 별개로 하고 국민의식이 그만큼 자신이 있었고, 그것이 의연함으로 나나탄 것이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큰 사람이기 n이해서 의식과 인격에 있어서 앞선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있는 큰 인격으로 준비되었을 때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관계에서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자신감이다. 이제는 남한 국민들은 나름의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 그것을 증명하는 사건이 지난 8월에 있었던 남북대치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세상을 품을 수 있을 만큼 큰 신앙, 큰 인격, 큰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복음과 그 가치를 자신의 신앙과 인격으로 담아낼 수 있을 만큼 큰 믿음의 사람이 될 때 복음과 그 가치가 사람들에게 전달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 자신의 인격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로써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말씀에 생명과 영원한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큰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신앙인격이 준비된 사람이 되어서 직면한 상황에 대해서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 때 조급하거나 어리석음으로 행동하지 않게 된다. 같은 상황에서도 조금 더 여유로움으로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힘이나 경제력에 의한 제압이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시인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준비될 때 자연스럽게 소통의 길도, 문제의 해결의 길도 선하게 열릴 것이니 말이다.

지난여름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을 통해서 결국 큰 사람이 이기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먼저 큰 사람이 될 때 상대를 포용할 수 있고, 그렇게 될 때 싸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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