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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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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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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2.>

김장

 

해마다 이맘때면 겨우살이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상이다. 겨울에 채소를 공급받을 수 없었던 시대에는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적인 일이 겨울 양식을 갈무리하는 것이었다. 채소만이 아니라 장류(醬類)와 구근식물인 고구마 감자를 비롯해서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곡류(穀類)까지 겨우내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각각의 저장 방법을 착안해서 갈무리를 잘 해야만 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김장은 반식량(半食糧)이라고 여길 만큼 중요했다. 당연히 한 가정에서 담그는 김장의 양은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도 봄날이 오면 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먹을 것이 부족했기에 김치는 반찬 이상의 의미를 갖는 식품이었다.

한 겨울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김장을 무리해놓으면 부자가 된 기분을 느꼈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장을 굳이 해야 하나 할 만큼 겨울에도 신선채소가 공급되고, 언제든지 원하는 식재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만이 아니라 원하는 채소들이 다양하게 공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겨울에도 여름 못지않게 신선채소가 공급되는 상황에서 굳이 김장을 해서 묵은 김치를 먹기보다는 신선한 김치를 그때그때 담아먹겠다는 생각이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생활습관이라고 할는지, 아니면 겨울철 배추 값이 비싸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김장김치의 특유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인지 이맘때가 되면 김장은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해서 해마다 김장배추가 싸니, 비싸니, 배추농사가 잘 됐니, 안 됐니 하는 뉴스들이 전해질 만큼 여전히 김장은 한국인의 생활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에 따라서 채소시장도 요동을 친다.

마찬가지로 농민들은 배추가 잘돼도 못돼도 걱정이다. 농민들은 여름부터 지금까지 모종을 심어서 노심초사하면서 기른 배추들이 무서리가 내리도록 밭에 그대로인 것이 아프다. 어쩌면 해마다 반복하는 일이니 아프다고 하기보다는 이제는 무덤덤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금년처럼 가뭄이 심해서 물을 주느라 애를 많이 쓴 경우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밭에서 겨울을 맞고 있는 배추를 보는 농부의 심정은 헤아리기 힘들다. 찌는 듯 더운 날에도 매일 돌보면서 가을을 기다렸건만 정작 그 날이 왔어도 밭에서 얼어가는 배추는 농부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편리한 것만 생각하면 김장을 안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경제력만 여유가 있다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구입해서 먹으면 되니 굳이 번잡하게 김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장은 밭에서 얼어가는 배추들과 그것 때문에 가슴에 멍이 들어가는 농민을 생각하면 조금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농민들은 직접 팔지 못하고 중개상에게 밭떼기로 파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계약금만 받고 재배를 한다. 중개인상이 뽑아 가면 나머지 돈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배추는 밭에서 그대로 얼어버린다. 그렇다고 중개인의 허락없이 뽑아서 팔 수 없다.

힘은 들어도 김장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만 경험할 수 있는 정과 나눔이 있다. 그것은 그냥 만들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두런두런 둘러앉아서 손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서로가 섬기는 역할을 통해서 김장을 담는 과정은 이웃과 지체의 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김장하는 일이 적어지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이웃과 지체의 관계가 없어지는 것 아닐까? 무엇이 먼저냐고 하면 궁하지만 어떻든 이웃과 함께 김장을 하면서 나눌 수 있는 정과 섬김의 관계는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가뜩이나 이웃과 멀어진 상태인데 함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지고 있으니 점점 더 상막한 관계가 되는 것 같다.

김치는 숙정되는 과정에서 기다림이 필요하다. 저온에서의 숙성과정은 김치의 맛을 깊게 한다. 어느 날 독에서 꺼냈을 때 풍기는 숙성된 김치냄새가 무거운 겨울날의 몸을 깨울 만큼 싱그럽다. 김치를 대할 때 마다 생명을 느끼게 된다. 가라앉는 기분의 겨울날 김치 한 조각이 주는 느낌은 생명과 같다. 겨울이기에 더 강력하게 느끼게 하는 김치는 한국인에게 없어서 안 될 것이다. 그런 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기쁨과 감사를 나눌 수 있으니 김장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담는 것이고, 이웃과 정을 담는 것, 그리고 기쁨을 담는 것 아닐까.

올해도 채마밭에서 주인을 찾지 못해 방치된 배추를 뽑아왔다. 왕복 기름값과 통행료, 점심값까지 생각하면 앉아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여름부터 정성을 다해서 기른 농민을 생각하면서 굳이 먼 길을 오가며 직접 뽑아왔다. 날을 잡아 지체들과 함께 두런두런 모여 앉아 종일 김장을 했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것이기에 김장을 하는 기쁨이 더했다. 수고는 했지만 그 과정이 좋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여럿이 힘을 모아 겨우살이 준비를 끝내니 겨우내 김치를 먹을 때 마다 김장하던 이야기가 꽃을 피울 것이니 생각만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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