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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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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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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2.>

흔적

 

제주행 첫 비행기로 공항에 도착했다. 뒤이어 다른 항공사를 이용해서 오는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켰다. 지난 밤 쓴 글을 다듬기 위해서다. 마무리해야 할 원고를 살펴보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부터 움직인 탓인지 눈이 무거워 잠시 눈을 감고 진정을 시켰다. 다시 눈을 뜨는 순간 평소에는 없었던, 아니 왠지 낯이 선 정경이 나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매트, 스티로폼, 담요 등이 공항청사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그것들을 치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순간 아무런 생각이 없이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하는 일을 멈추고 옮겨지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주시했다.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제주공항의 사태가 떠올랐다. 바로 어제까지 공항에 갇힌 채 오도가도 못했던 사람들이 공항청사 안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정작 까맣게 있었던 것이다. 폭설과 폭풍으로 공항 활주로가 만 이틀 동안 완전히 폐쇄되면서 9만 여명이 제주도를 떠나지 못한 채 발이 묶였다. 돌아갈 교통수단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갑자기 대안이 없기에 공항청사에서 사실상 노숙수준의 생활을 해야 했다. 시내의 숙소와 교통편을 확보한 사람들은 그나만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청사 안에서 활주로가 열릴 때까지 무작정 대기해야 했다.

난방도 문제지만 정작 누워야 잘 수 있고, 쉴 수도 있으련만 콘크리트 바닥에 눕는 것은 불가능했다. 뭔가 깔판이 필요했다. 이때 제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보루지, 신문, 스티로폼, 어린이 놀이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매트 등이었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계획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청사 안에서 돌아갈 항공편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수용이 불가능할 만큼 포화상태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쉴 수 있는 공간과 방법을 만들어주어야 했지만 정작 묘수가 없었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이곳저곳에서 마련한 것들이 지금 치워지고 있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머물렀던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면서 남겨진 것들이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은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전해지는 소식을 듣는 사람들도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들, 그것은 이제 다시 필요하지 않는 것이 된 채다. 단 이틀, 혹은 사흘정도 청사바닥에 깔려 돌아갈 길이 없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사실상의 매트가 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쓰레기 신세가 된 것이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일행이 도착해서 컴퓨터를 접고 짐을 챙겨서 청사 밖으로 나왔다. 거기서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그곳에도 같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화면으로 전해지던 장면이 다시 스쳤다. 많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걱정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쌓인 쓰레기를 보면서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길어야 사흘이었는데 그동안 청사에서 지낸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쓰레기는 엄청난 양이었다. 재활용하는 것조차 여유롭지 못한 것들이기에 버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주 화요일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버리는 쓰레기의 양이 요즘 예년보다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새삼 쓰레기 버리는 날의 정경이 잔상으로 뇌리를 스쳤다. 왜 갑자기 쓰레기의 양이 늘었는지는 모르지만 쌓여있는 것을 볼 때마다 인간이 살면서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60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아파트단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쓰레기에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남기는 흔적이 쓰레기뿐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본다.

인간이 살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정말 쓰레기뿐이 아닐지?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러나 인간이 남기는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 그 이름이라는 것조차도 아픈 것이라면 차라리 기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니 말이다. 인간이 지나는 곳에는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다시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흔적들이다. 한데 그마저도 최소한의 것이 아니라 욕심으로 산다면 그 흔적은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상처로 남는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아직까지 이 나라에서 생산된 쓰레기를 완전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수출을 하거나 서해의 먼 바다에 실어다 버리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처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각자가 쓰레기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차선책이다. 하지만 앉았다가 일어서기만 해도 흔적이 남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생각조차 없이 산다면 우리가 남긴 상처를 훗날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누구의 몫일까? 오늘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서도 생각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항을 빠져나갔다.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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