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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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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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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8.>

에고이즘

 

Egoism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이기주의, 자기본위, 자기중심 등으로 번역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이기주의자, 또는 자기 본위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본성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사람만 갖고 있는 요소가 아니다. 아담 이후 인간이라면 모두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 즉 그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라는 의미이다. 다만 얼마나 훈련되고, 교육되고,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느냐 하는 인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특별해서 태어날 때부터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며칠 전 이용한 제주행 첫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한 석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니 복잡했다. 탑승수속부터 사람이 많아서 겨우 탑승 마감시간에 탈 수 있었다. 좌석 배정표를 확인하고 내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일행이 있는 모양이었다. 승무원이 왔다. 내 자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내 자리에 앉은 여자 승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일행들도 당연하다는 듯했다. 승무원이 난처해하면서 그 일행에게 설명을 했다. 그럼에도 막무가내였다.

상황을 판단한 나는 승무원에게 내가 그 승객의 자리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승무원은 ‘하지만 좌석이 가운데인데 괜찮겠냐?’ 내게 물었다. 나는 씩 ~ 웃고 말았다. 50대 중반이나 된 일행 몇 사람이 근사한 등산복 차림으로 여행을 가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의 바로 뒷자리에 본래 그 사람의 자리에 앉았다. 일행이 같이 앉아서 가고 싶어서 그런 것 외에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먼저 내게 양보를 요청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승무원의 난처해하는 모습에 내가 미안을 느낄 정도로 막무가내니 어찌하겠는가?

내 자리에 앉은 일행은 비행하는 동안 내내 떠들었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착륙하자마자 그들은 짐을 챙기느라 일어나서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끝내 내게 미안한 눈길마저 주지 않았다. 당당하고, 당연하다는 듯 앞서 나갔다. 앞에 가는 일행을 보면서 측은지심이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거나 나이가 많이 들어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있어서, 혹은 일행과 꼭 같이 하고 싶으면 수속하는 과정에서 좌석배정을 요청하면 될 일이다. 부득이 그렇게 못했다면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좌석을 배정받은 사람이 오면 정중히 부탁을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좌석은 누가 그 자리에 앉았는지까지 검색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승무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간과되고 말았다.

짐을 찾기 위해서 가는 동안 멋진 등산복 차림으로 앞서가는 일행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한 순간에 지나치는 말이라도 행여 결례를 행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 나는 완전하게 행동했다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 일행이 무의식적이었던 것처럼 나도 무의식적이었기에 특별히 기억에 없는 것뿐이리라. 결국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의식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것이고, 생각함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의식하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결국 이기적이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이고,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꾸어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결국 자신의 입장이니 말이다. 자기중심의 생각은 이처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나쁘기 때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준비, 내지는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과 여유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우 의식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것의 한계까지도 인정할 수 있을 때 진정 인간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겨우 다른 ‘나’로서 ‘너’를 보려고 하는 정도가 전부 아닌가? 그마저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기에 할 말이 없지만 정녕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공항청사를 나서니 매섭게 부는 대한추위가 온몸을 움츠리게 했다. 뺨을 스치는 제주도의 거센 바람은 내게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도 있다고 ···. 의식하지 못한 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자신을 성찰해 보라고 ···. 지금도 내가 당하는 입장이니 다른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

정찬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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