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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信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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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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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2.>

花信遺憾

 

꽤 여러 해 동안 3월 1일이면 어느 산엔가 올라가 함께 기도하곤 했다. 최근 들어서 왠지 그러한 분위기가 없어진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다. 모처럼 시간을 만들어 겸사해서 길을 나섰다. 특별한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고 길을 나섰기에 어디로 갈 것인지 막연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10여 년 전 3월 1일에 올라서 함께 기도했던 국사봉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 딱히 없으니 국사봉이 좋겠다는 판단에 다른 생각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 산을 오를 수 있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등산화 끈을 졸라맸다. 그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이라고 해야 해발 128미터 정도니 좀 큰 언덕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완만한 임도(林道)로 이어지는 산길은 홋홋하기까지 했다. 찾는 사람도 없으니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하지만 멀리 황해를 건너온 겨울 끝자락의 바람은 매서웠다. 10년 전에는 봄이라는 생각에 가볍게 입고 올랐다가 삭풍에 호되게 당한 터라 예비한 겨울 등산복을 챙겼다.

30여 분 걸어 국사봉 정상에 올랐다. 그곳엔 10년 전에 없었던 팔각정이 세워져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정자에 올라 기도한 다음 멀리 바다 건너 신송도와 인천공항을 조망했다. 바람은 불지만 외항선이 오가는 사이에 점점 떠 있는 섬들이 한가롭게 느껴지는 한 폭의 그림이 서쪽 하늘 아래에 그려져 있다. 누군가 그린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풍경화다.

정자에 머문 시간은 잠시다. 이내 배낭을 내려놓고 봄의 전령인 산자고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낙엽을 들추면서 몸을 숨기고 있을 녀석들의 자태를 훔쳐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겨울 늦추위가 국사봉에 터를 잡고 있는 녀석들에게 겨울잠을 늦게까지 자게 한 모양이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국사봉 기슭에 터를 잡은 또 다른 녀석들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노루귀도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노루귀의 귀여운 모습이 아른거리지만 늦추위 때문인지 올해는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두리번거림을 멈추고 산기슭 다른 곳으로 옮겼다. 국사봉에는 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산허리를 돌아서 북쪽을 향한 골짜기를 찾아들었다. 작은 암자가 자리라고 있는 곳이다. 암자 뒤를 돌아서 다시 올라야 한다. 한데 북향이라 그런지 그곳엔 지난번 내린 눈이 그대로였기에 눈을 헤집고 올라야 했다. 그런데 낮선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골짜기에 몇 사람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엎드린 채로, 어떤 사람은 뭔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 녀석들이 있구나! 나는 직감적으로 복수초가 꽃을 피웠음을 알아챘다. 10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여기에 복수초가 자생하고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몰랐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SNS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서 알 사람은 다 알게 된 모양이다. 서둘러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녀석은 아직 활짝 피지 못한 복수초였다. 골짜기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덮여있지만 녀석은 그 눈을 헤집고 나와 꽃잎을 피우고 있었다.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노란 꽃잎을 수줍은 듯 당당하게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아직 겨울잠에서 깨지 않은 녀석들이 대부분이지만 몇 녀석이 꽃대를 올리고 상춘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찾은 이들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었다. 녀석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엎드리고, 쪼그리고 예쁘게 담기를 경쟁하고 있었다. 녀석이 좋아 찾았다기보다는 그들의 관심은 사진이다. 애써 참았지만 복수초에 대한 배려가 없는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변함이 없이 그 자리에서 봄의 전령으로 화신을 전해주고 있는 녀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행복했다.

나를 행복하게 한 녀석들은 언젠가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이지만 녀석들은 그 이전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동안 녀석들을 찾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10년 전 녀석들을 처음 찾아나섰을 때 설렜던 생각이 생생했다. 몹시 추웠던 기억과 함께 국사봉 어디에 녀석들이 있는지 알지 못한 나로서는 정보를 준 지인에게 전화를 하면서 녀석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을 찾아야 했기에 설렘과 추위, 그리고 넓은 산 속에서 녀석들을 찾아 헤매던 기억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 녀석들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특별한 것이었다. 오늘도 작은 꽃 한 송이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피어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오길, 노루귀나 산자고는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어 대면할 수 없었지만 부지런한 복수초를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녀석에게 받은 선물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닐까? 그마저 자신의 사진에 담겠다고 아직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녀석들을 밟아버리고 있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누림은 이기적일 때 아픔을 동반한다. 존재감을 주지 못하는 생명일지라도 머지않아 꽃을 피울 것인데 지금 자신의 사진에 방해가 된다고 밟아버린 것들이 눈에 밟힌다. 그것은 인간이 찾고 있는 이기적인 기쁨일 것이다.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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