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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행복 (눅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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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행복 (눅19:1-10)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들어 가실 때 삭개오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부자요 세리장으로써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행복이 없었습니다. 키도 작았고 사람들에게 소외 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뽕나무 위로 올라 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찾아와 “너희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행복을 찾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행복을 잃어버린 불행한 시대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행복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행복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첫째, 만남의 행복입니다.(5-6절) 불행한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행복이 시작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모두 행복 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되는 형편 없는 여인 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 되었고 진정한 행복을 회복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바나바라는 좋은 동역자를 만남으로 사역의 행복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결정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을 만나십시오.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문 밖에 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는 순간 행복은 시작 될 것입니다.

둘째, 나눔의 행복입니다(8절)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재물을 이웃과 나누겠다고 고백합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남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남을 위하여 내 것을 나누겠다는 삭개오 결단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삭개오의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의 무서운 질병 가운데 하나는 소유의 욕심입니다. 심지어 청소년들도 돈만 되면 뭐든지 하겠다는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의 축적은 행복과 일치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난한자를 돕고 이웃과 사랑을 나눌 때 행복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저의 경험에 남에게 대접을 받을 때의 기쁨 보다는 나보다 못한 이웃과 나눌 때 기쁨이 더욱 컸을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루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셋째, 구원의 행복입니다(9절)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는 주님의 말씀은 삭개오의 가장 큰 감격과 행복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문맥상 구원에 대하여 나중에 표현 되었지만 자신의 재물까지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감격의 결과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유도 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세상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나는 가장 행복한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3장 17절에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어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행하여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만나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김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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