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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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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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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19.>

부활신앙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앞에서 부활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간절함으로 소원하게 되는 사후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죽음 앞에서 만큼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내세에 대한 것이다. 다만 부활은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기대 일 뿐이다. 이처럼 부활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즉 모든 사람은 내세에 대한 소망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신앙과 관계없이 죽음 앞에서는 같은 마음을 갖는다. 최소한 부활은 아니더라도 사후에 좋은 곳(그곳이 어딘지? 어떤 곳인지? 관계없이)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반면에 기독교의 부활은 누구나 바라는 막연한 기대심이 만들어낸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은 부활이 실제이며, 부활은 영과 육의 온전한 재창조라고 말한다. 육만 이거나 혹은 영만의 부활이 아니다. 그런데 부활을 말할 때 그렇게 나눠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한 쪽만의 부활은 성경이 말씀하는 기독교의 부활이 아니다. 그것은 이교적이며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부활이다. 그들은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누구도 부활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 있다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부활을 말하기는 하는데 부활을 ‘사실’로 믿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활을 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경험적으로 증명하려는 결과다. 이것은 인간이 합리적, 논리적 사고로 훈련되었기 때문에 동반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에서 부활은 믿음으로만 알 수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나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여전히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 부활은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부활을 ‘실제’와 역사적 ‘사실’로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념적인 부활을 말할 뿐이다. 관념적인 부활은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기에 특별히 신앙을 가져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활을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창조주와 창조의 사실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창조를 믿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부활은 좀 믿기가 그렇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도 믿지 않거나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믿는데 부활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를 믿는다고 하면 부활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믿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는 무(無)로부터 하나님의 권능과 완전한 지혜로 피조세계를 있게 하셨다. 반면에 부활은 이미 존재했던 생명의 재생(再生)이라는 점에서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창조는 믿는데 부활은 믿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창조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창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과 뜻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창조적 사건은 역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설적으로 부활 역시 같은 논리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창조는 보지 못했으나 죽음은 경험했기 때문에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경험적 지식이 선험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부활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창조도, 부활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가? 하나는 창조에 대한 믿음이 관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창조는 거대한 것이기 때문에 증명과 규명의 대상으로 삼기에 벅차다는 생각 때문에 만물은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막연한 인정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도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성경에 계시된 창조를 믿지 않는 일반인들도 ‘조물주’라는 말로 창조를 막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에 부활은 우선 개인적이고 자신도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창조에 비하면 지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스스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서는 합리적, 분석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에 부활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믿을 수 없다는 표현이 아닐까?

결국 부활을 자연적(물리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인 것과 부활은 그분에 의한 재창조라고 하는 것을 동시에 믿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성경은 부활을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사역으로 되는 것임을 말씀한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즉 부활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부활은 창조와 함께 믿음으로 알 수 있는 지식이며, 성경은 이 부활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기에 부활의 사실을 실제적인 것으로 믿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찾고 있는 유일한 소망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이루는 완전한 사건이다. 부활이 없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며,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헛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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