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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21 | 명품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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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광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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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르네리는 17세기~18세기에 이탈리아 크레모나 지역 출신의 현악기 제작으로 유명한 가문의 이름이다. 과르네리는 종종 현악기의 장인으로 알려진 가문인 스트라디바리와 아마티와 비교되곤 한다. 과르네리 가문에서 처음으로 현악기를 제조하기 시작한 1650년대에는 당시 가문의 안드레아 과르네리가 아마티 공방의 견습생 이었던 터라 주로 아마티의 방식을 따랐지만 이후에는 과르네리 고유의 양식을 발전시켜 독립된 장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대대로 이어 만들어온 과르네리 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과르네리 델 제수는 안드레아 과르네리의 손주인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과르네리가 만든 악기로 스트라디바리와 함께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바이올린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를 함께 연주한다.

 델 제수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야샤 하이페츠, 프리츠 크라이슬러, 아이작 스턴, 이작 펄만, 기돈 크레머, 핑카스 주커만, 장영주 등이 있으며, 바이올린의 명장 니콜로 파가니니가 가장 아끼던 바이올린도 캐논이라는 별명의 델 제수였다.

 과르네리 델 게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더 알아주는 바이올린이다. 파가니니 이후 수많은 바이올린 거장들이 ‘과르네리 델 게수’를 선호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희귀하기 때문에 가격이 더 비싼 측면도 있다. 현재 전 세계에 남아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600여대인데 반해 과르네리는 150여대에 불과하다.

제2차 대전 때 연합군은 낙하산을 이용하여 적지에 병력을 투입했다. 그런데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서 군인들이 적지에 투입되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그것은 낙하산 만드는 기술부족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정신적 해이였다. 당시 사령관이던 패튼 장군은 책임생산을 공장에 지시했다. 곧 낙하산에다가 생산자의 이름을 적게 하고 만든 사람이 자기 낙하산을 타고 직접실험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낙하산의 결함은 없어지고 전쟁을 승리할 수 있었다. 명품은 만든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인간을 명품으로 만드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였고 명품인생을 수리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가치 있는 명품이다.

 

조광성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겸임교수
세계샬롬선교회 이사장
송현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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