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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와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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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와 리더십

- 장자옥 목사 -

 

초보 운전자 표지는 여러 가지다. 일본에서는 햇병아리를 상징하는 깃털 모양의 화살표를 앞뒤로 붙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따로 정해진 게 없다. 대개 ‘초보 운전’이라고 써 붙이지만 때론 광고 카피 이상의 기발한 문구가 등장한다. ‘왕초보’, ‘세 시간째 직진중’, ‘원초적 운전’, ‘좌우 백미러 전혀 안 봄’ 등은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중 단연 압권은 “미치것쥬? 지는 환장하것슈~” 이다. 주위의 운전자들에 대한 미안함, 부끄러움, 마음먹은 대로 차가 움직여 주지 않아 안절부절못하여 식은땀을 흘리는 초보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문제는 요즘 정부의 경제 정책이나 총회 운영이 마치 초보 운전자의 행보를 보는 듯해, 이 기막힌 카피가 처절한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먼저, 현 정국의 난맥상을 두고 세인들은 “아마추어리즘이 빚어놓은 현상”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마추어는 프로에 비해 오히려 신선하다고 변명하는 정부 고위층 인사도 있지만 정치는 아마추어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존망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사각의 링이며 혈투 장소다. 대중의 눈요기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 스포츠 세계도 우선 아마추어로 기본기를 다진 다음에야 프로로 전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청와대 내에 23개나 되는 위원회를 두고 각기 한 건 터뜨리기나 현실을 좌시하는 이상적 대안, 심지어는 행정부 영역까지 성역 없이 넘나들게 방치하고 있다.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나 교수 출신들로서 대학과 청와대를 자유롭게 넘나들 듯이 현실과 이상을, 이론과 실제 사이를 통제도 없이 종횡하고 있다.

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위원회에 불과한 것이다. 정책이나 안건을 연구 입안하여 대통령께 전언하여 대통령이 결재하거나 국문회의를 거쳐 시행되어야 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그들은 목표 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관료적 전문성을 처음부터 거부하고 직접 나서서 챙기면서 오늘의 난맥상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또 하나는, 교단 정치의 현주소가 아마추어리즘이 빚어 놓은 혼란의 극치인 것을 보면서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 적용의 형평성이나 일관성을 상실한 헌법의 적용, 총회본부 운영이나 재산 관리 부실에서 오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 교단 총회 개최지를 놓고 막바지까지 설왕설래한 일, 툭하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지역총회 폐지에 따른 후속 조치의 세련되지 못한 마무리, 특히 여성 안수 문제는 시대정신에 부응했음에도 불고하고 그 시행이 무리수였다는 것은 자타가 시인한 사안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최근에 이렇게 아마추어리즘의 병폐가 심각하게 빚어지게 되었는가?

첫 번째. 무엇보다 교단 정치의 아마추어리즘에 일조한 것은 지역 총회였다. 당초 지역 총회는 정치와 직위 과열을 해소하고 교단 민주화를 통하여 지역 발전을 꾀하자는 좋은 취지와 달리 리더십의 검증을 전혀 받지 못한 지역 원로나 선배들이 그냥 지역 총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력 관리 차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부정적으로는 지역 정치에 머물지 않고 총회 정치로까지 확장시켜 가면서 아마추어리즘이 혼란의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일부 부흥사들의 역할도 부정적으로 일조했다고 본다. 얼굴이 널리 알려졌다는 이점과 경제적 여유가 그들로 하여금 전혀 분야가 다른 교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부흥강사 하면 성결교회였으나 오늘 와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세 번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영웅주의다. 원래 목사들은 생리적으로 겸양하고 양보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자칭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좌우할 것 없이 “내가 먼저!”라고 선언하며 얼굴을 내밀면 우선권이 주어진다고 몰염치하게 믿고 있다. 미친 척하고 손 내밀어 내가 하겠다고 하면 굳이 핏대를 올리면서까지 싸우려들지 않는다는 목사 세계의 생리를 교묘하게 악용한다고나 할까? 조용한 다수가 인격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기에 그들은 더욱 둔감해진다. 그렇게 나오는 영웅적인 사람에게 ‘그래, 너 잘났다. 해먹어라!’는 식으로 타협해버리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음식이나 문화에는 퓨전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목사는 퓨전을 거부해야 한다. 물론 교단의 위상을 양심적으로 카운트하면서 이제부터는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바울이 자기를 부르신 주님의 뜻과는 달리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고 헌신했던 것처럼 자기를 부르신 부름에 차분하게 그리고 끝까지 응답해야 하겠다.

장자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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